일주일에 세 번은 병원에 엄마를 모시고 재활치료를 다니고 있다. 처음 뇌졸중으로 입원한 엄마를 보며 뇌졸중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죽지 않는 병 죽을 수도 없는 병 연약해진 몸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만 하는 병. 본인도 힘들지만 가족도 함께 고통을 짊어져야만 하는 병이 뇌졸중이다.
물론 다른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과 가족들의 아픔 또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뇌졸중은 그렇게 계속 희망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병이기 때문에 더 안타깝다고 해야 하는 것인가? 혹은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인가? 두 갈래의 고민에서 해답을 찾기란 어렵다. 어떤 가족에게는 그래서 안타까움이고 또 어떤 가족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함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신기하게 사람이란 동물은 적응하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처럼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그리고 죽어도 살아날 구멍이 있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상황은 어느 것 하나 변한 것이 없지만 생각이 변하면 그렇게 살아가지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 모습 그대로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함께 작은 사업을 꾸려가던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뇌졸중에 걸려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게 되었다. 금방 좋아질 줄 알았던 남편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찾아와 남편이 어디 갔냐고 물었다. 부인은 여행을 갔다고 대답을 했다. 남편이 뇌졸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에 걸려 뇌의 어딘가가 죽어버리면 그 부분은 영원히 되살아 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뇌와 함께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던 것들을 할 수 없게 된다. 뇌졸중의 정도에 따라 언어도 , 시력도, 생각도. 움직임도,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 조금씩 부족한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뇌졸중이 남긴 후유증이다.
오늘도 재활병원에서는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않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 되어 있는 것이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현장이 이제 편안한 눈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것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는 증거일까?
인생에 갑자기 밀려오는 파도들을 어쩌면 잘 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파도를 피할 수는 없다. 갑자기 밀려오는 감당할 수 없는 파도 속으로 몸이 말려들어 물속으로 온몸이 빠져들 수도 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아직 다른 파도를 감당할 여력이 안되는데 다시 파도와 부딪쳐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어설 수 있는 힘만 있다면 다시 밀려오는 파도를 마주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파도 타는 법을 배울 수 있으리라.
오늘도 우리 삶에는 크고 작은 파도들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파도를 부드럽게 타는 요령을 배워야 할 것이다.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파도를 마주하며 파도 뒤에는 잔잔한 바다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파도들은 잔잔한 바다의 일부일 뿐이다. 잠시 바람이 불어와 파도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따라 파도에 부딪혀 보자 그리고 그 파도에 부딪치는 감각을 기억해 보자. 파도에 부딪히는 고통스럽지만 짜릿한 감각이 느껴진다면 나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