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밭이 옥수수밭이 되기까지

by 약산진달래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농사를 짓던 밭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장화 밭, 망골 밭도 등 너머 밭 모두 엄마의 밭들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연로해지시면서 멀리 있던 밭들은 하나씩 팔았고 집 뒷밭만 남겨 두었었다. 엄마의 밭들은 깨밭이 되고 콩밭이 되고 배추밭이 되기도 했다. 특히 엄마의 밭 주인공은 고추밭이었다.


엄마의 고추밭도 콩밭도 배추밭도 깨밭도 콩밭도 모두 없어졌다. 그런데 이번에 시골에 내려와 바로 집 앞에 있는 샘 위에 있는 밭이 우리 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잡초가 가득한 도라지 밭이었다. 엄마가 언제 심어 놓은 것인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도라지가 자라고 있었다. 엄마의 밭이 아직 남아있었던 것이다.


4년 이상은 된 약이 되는 도라지를 모두 캐겠다는 일념으로 처음에는 호미를 들고나가 보았다. 호미로는 도라지를 절대 캘 수가 없었다. 땅을 파고 또 파도 도라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땅을 좀 더 잘 팔 수 있는 쇠스랑을 들고나가 보았다. 쇠스랑으로 땅을 파보니 깊게 팔 수 있었다. 그런데 쇠스랑에 도라지가 찍혀서 나오는 것이다. 쇠스랑으로 땅을 몇 번 파다 보니 힘이 들어 제풀에 지쳐버렸다. 다음엔 삽을 들고나가 보았다. 삽을 땅에 찍고 한 발로 깊게 눌러보았다. 삽이 땅으로 쏙 들어가 쉽게 도라지를 한 번에 파낼 수 있었다. 처음부터 삽질을 했으면 개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도라지를 대충 파내고 나니 이곳에 오버니가 옥수수를 심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바쁜 섬마을 농부의 일손을 빌려 트랙터가 들어올 수 없는 작은 밭이기에 밭 가는 작은 농기계를 들고 와 밭을 갈기 시작했는데 오래된 풀보다 도라지를 파기 위해 파놓은 고랑 때문에 더 밭을 갈기 힘들었다고 알려주었다.


밭을 적당히 갈아놓으니 주말에 내려온 오라버니는 하루 종일 엄마의 도라지 밭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했다. 다시 밭을 갈기 시작하더니 유튜브에서 밭고랑 둑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며 거름과 비료를 주고 고랑을 깊게 파고 모종을 심을 수 있는 둑을 만들어 놓았다. 그곳에 수박 모종과 아삭 고추 옥수수 모종을 심어 놓았다. 이 밭에 가장 많이 심어진 모종은 옥수수 모종이다.


엄마의 도라지 밭은 이제 오라버니의 옥수수밭이 되었다. 기다리던 단비까지 아낌없이 내려 주었으니 쑥쑥 자랄 일만 남은 것 같다. 한여름 시골에 내려와 옥수수밭에서 식구들과 둘러앉아 수박을 나눠 먹고 옥수수를 쪄 먹으며 밥상에 오른 아삭 고추를 찍어 먹을 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까지 배가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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