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거리두기

by 약산진달래

텃밭에 뿌린 싹들이 제법 성장했다.

"아야 이라면 안 열린다. 뻗어 나갈 데가 없어서 안 열려야"

"듬성듬성 심어야제 여기 여기는 가운데것들은 다 옮겨심어야 한다. 안 그라면 안 열려야"

윗집 할머니는 오늘도 나의 작은 논시밭인 텃밭을 시찰 중이시다.

그러고 보니 씨앗을 마구 뿌렸더니 이제 잎이 커가기 시작할 뿐인데 더 뻗어나갈 자리가 없다.

감나무밑에 해바라기는 너무 많이 한곳에 뭉쳐 있다. 싹이 올라온 아이들을 몇 번이나 옮겨심었는데도 어느 정도 자라기 시작하니 너무 거리가 가깝다. 해바라기가 꽃을 피우려면 몇그루의 해바라기는더 자리를 옮겨서 심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코스모스도 마찬가지다. 씨앗을 한곳에 던지듯 모두 뿌렸더니 조밀 조밀 한곳에 뭉쳐서 자라고 있다. 비 온 후 산소에 옮겨 심으려 했으나 귀찮아서 하지 못했는데 이러다가 코스코스 꽃은 피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호박과 오이다. 벌써 두 번이나 다른 곳으로 옮겨 심었는데도 자리가 없다. 잎이 무성하게 올라와 뻗어 나갈 자리가 부족하다. 임시방편으로 위로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지지대를 꼿아 놓았다. 그런데 호박이 땅으로 퍼져 자라는걸로 알고 있는데 위로 타고 올라 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오이와 호박이 자라갈 자리를 생각하지 못하고 무작정 씨앗을 뿌린 탓이었다. 땅속에서 생명력을 잃지 않고 그 작은 씨앗들이 힘을 내준 덕분이었지만 땅 위로 올라와서도 씨앗들은 자리다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상추도 며칠째 쏙아내며 밥상에 오르고 있는데 여전히 하루가 다르게 무성하게 자란다.

식물도 잘 자라려면 거리 두기가 필요한데 사람들도 살아가기 위해 거리 두기가 한창인 요즘이다.

사람에게는 얼마 정도의 거리가 필요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섬마을 시골에서 지내고 있는 시간은 사람들과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그와 반대로 sns 상의 거리는 가깝기 그지없다. 거리가 필요 없이 바로 접속이 된다.

도서관에서 듣고 있던 대면강의들을 시골에 내려와 zoom강의와 유튜브강의로 실시간으로 듣고 있다.

거리가 미치는 사람과의 관계의 온도는 얼마일까? 거리와 상관없이 가까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가까이 있지만 너무 먼 사람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거리두기에 따라 온도가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상대방의 상황에 맞는 적당한 거리두기와 알맞는 온도가 필요하다.

당장 텃밭의 호박과 오이의 거리를 조금 더 멀리 두어야 하겠다. 옮겨간 아이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한동안 홍역을 치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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