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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장에 김 말리는 풍경

지금은 사라진옛 풍경

by 약산진달래

얼음처럼 추운 겨울 새벽 일찍부터 아버지와 엄마는 얼어붙은 바다에 나가 김을 채취해오신다. 그리고 그 김을 씻고 기계가 없던 시절 도마와 칼로 타각 타각 잘게 잘게 만들어 물에 섞는다. 윤기가 나도록 콩기름도 살짝 넣는다. 네모난 발장에 네모난 틀을 놓고 잘 개 부순 김을 부었다. 그러면 한 장의 김이 완성이 된다.

기억 속에 아버지는 참 빨리도 김을 발장 안에 네모나게 만드셨다.

도회지로 고등학교를 가기 전까지 오빠들은 아마 새벽에 일어나 부모님 일을 도왔을 것이다. 잠을 자고 싶어도 자지 못하고 부모님을 도와 김을 내는 일을 했을 것이다. 발장 위에서 젖은 김이 어느 정도 물이 빠지면 건장에 나무 꼬챙이를 꽃아 말리는 작업을 했다. 나는 꼬챙이를 날랐을 것이다. 건장에 말리려고 김을 나르는 것도 도왔을 것이다. 김을 건장에 말리는 작업 중 어쩌면 제일 아랫줄을 내게 맡겼을 수도 있다. 김을 건장에 말리는 작업도 실수가 없어야 했다. 아마 삐뚤게 말리면 김의 상품 가치가 떨어졌겠지.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고 오빠들은 추억한다.


한낮의 햇빛을 받아 건장에서 김은 마른다. 학교에서 돌아온 오후가 되면 마른 김을 건장에서 걷어내고. 김만 발장에서 분리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넷째 오빠는 발장을 잘 쳤다고 그 시절을 추억한다. 그 옆에서 발장을 개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발장을 치는 소리가 딱딱 딱딱 거리며 시계 추처럼 앞으로 뒤로 잘도 손의 움직임을 따라 돌아다녔다.


꼬챙이도 아버지는 낫과 칼로 대나무를 깎아 손수 만드셨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목공 일도 잘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가 만든 것들이 참 많았다. 추운 겨울 엄동설한 그 시절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겨울 바다의 추위와 싸우고 잠과 싸우며 일하셨던 겨울 풍경. 지금은 사라진 옛 풍경 이 한 장의 사진이 내게 주는 의미와 감동이 있다.


아버지와 추운 겨울 그 시절의 풍경 어떤 여유도 사치도 누리지 못하신 내 아버지 어머니의 생의 투쟁이, 힘겨운 삶의 현장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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