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노인정에 할머니들이 놀고 계시는지 보러 나갔다. 할머니들이 한분도 안 계셨다. 실망감을 감춘 채 집으로 돌아오는 중 집 아래쪽에서 할머니 두 분의 모습을 목격했다.
힐머니들은 무씨를 흩어 뿌린 밭에서 연한 열무 잎을 솎아 냈다. 열무김치를 담가 드시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 밭에 뿌린 씨앗들은 이제 싹이 나고 있을 뿐인데 다른 어르신들 밭에서는 자랄 대로 자란 배추와 무, 쪽파를 볼 수 있다.
여린 열무잎은 다듬지 않아도 파릇한 잎사귀가 깨끗하게 정돈이 되었다. 번거롭지만 쪽파는 끝을 조금 다듬어 내야만 한다. 여린 쪽파들의 하얀 속살까지도 예뻐 보인다. 부추도 베어내셨는지 먼지 하나 없이 다듬고 계셨다. 할머니들의 다듬는 솜씨는 단연코 김치 장인의 손이었다.
"너도 좀 주까? "
"저야 주시면 감사하죠"
"간해서 바로 묻혀 묵어도 맛있어야 연한께"
반으로 나누어주신다고 하는데 내 몫을 더 많이 챙겨주신다.
"많이 안 주셔도 괜찮아요. 그냥 한두 끼 먹을 만큼만 담그면 돼요"
"나 혼자 묵응께 이것도 많아야, 소금 간 살짝 해놨다가 밥 갈아서 젓갈이랑 넣고 바로 묻혀묵어라 맛납다"
"밥을 언제 갈아서 담근당가 그냥 담가 먹어라"
"그래도 밥 갈아서 넣고 먹어야 맛있재"
두 어르신의 열무김치 담그는 법 강의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덕분에 열무김치 담그는 법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어르신들이 나머지 열무와 쪽파, 부추를 다듬고 계실 동안 밭둑길로 잠시 내려가 보았다. 배추밭의 배춧잎은쫙 벌리며 잘 자라고 있었다. 밭둑길에는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 갓 밭이 만들어졌다. 민들레도 다시 꽃을 피우며 연한 잎사귀를 보여주었다. 갓과 민들레 잎도 열무김치와 함께 넣어볼 생각에 뜯어 왔다.
할머니들은 다듬은 김치거리를 유모차에 실었다. 굽은 허리와 굽은 무릎으로 유모차를 밀고 집으로 돌아가신다. 어르신들의 평생 삶이 굽은 허리와 무릎으로 협착되고 달아버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따라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안타깝다. 어쩌면 우리 엄마도 저렇게 김치거리를 깔끔하게 다듬어 맛있는 김치를 담가 자식들에게 보내주셨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나누어주신 열무와 쪽파 부추로 김치를 만들었다. 밭둑에서 뽑아온 갓과 민들레도 함께 넣었다. 텃밭에서 빨간 고추까지 따와 밥을 푸고 함께 미니 절구에 갈아보았다. 밥알이 잘 갈리지 않았다. 젓갈을 찾아보았는데 집에 젓갈이 보이지 않았다. 밥알은 제대로 갈리지 않고 젓갈을 넣지 못했지만 그런대로 어설픈 얼갈이김치가 되었다. 할머니들의 열무김치 담그는 법 전수는 그래도 반성공한 셈이었다
열무김치를 다 담가 놓았는데 동창생이 친구와 함께 시골집에 내려왔다며 연락을 해왔다. 갑자기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반찬으로 내놓을 열무김치가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친구들에게 텃밭에 남아있는 고추도 따갈 수 있도록 하고 김치 반찬에 점심을 대접해서 보냈다. 할머니들에게 열무를 나누어 받고 열무김치 담그는 법을 전수받은 날이다. 덕분에 열무김치를 담가 시골에 내려온 친구에게 시골인심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