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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Feb 11. 2022

3000보의 루틴

매일 같은 장소 같은 길을 걸었다. 잠시 변화를 주고 싶을 때는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발걸음이 먼저 향하는 길이 있다. 아침일 수도 있고 혹은 한낮일 수도 있고 늦은 오후가 되기도 한다. 겨울 동안 동면을 한 듯 집콕 중이다가 햇살이 미취는 날이면 그 길을 찾아 나선다. 오늘도 모처럼 산책을 나선 날이다. 그런데 그 변화 없는 것 같은 길에 새로운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날씨가 포근해져서 겨우내 온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패딩을 벗어던졌다. 어제만 해도 햇살은 따사로운 봄날 같았지만 바람은 매서운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하루 사이 봄의 기온이 스멀스멀 대지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솜털을 벗어던진 몸은 한결 가벼워야만 할 텐데 몸은 무겁기만 하다. 아직도 몸속 가득 차곡차곡 쌓여버린 내장지방들을 덜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검은 패딩 속으로 감싼 애벌레의 모습이 더 편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껏 생각했던 무겁고 느린 걸음은 벗어던진 옷의 무게가 아니었다.


걷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졌을뿐더러 걷는 발걸음 역시 가벼워 졌다. 길이 좋아지니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아니 코로나로 인해 멀리 나갈 수 없으니 집 앞 산책로라도 걷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먼 곳으로 나들이를 갈 수 없는 시민들을 위해 도시는 시민들이 좀 더 자유롭게 산책을 할 수 있도록 걷는 길을 정비하고 있다. 새봄을 맞이하기 위한 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손길들이 바쁘기만 하다. 어쩌면 매해 하고 있는 일일 지도 모르지만 더 대대적으로 걷기 좋은 길을 만들기 위해 산책로길에 새 옷을 입혀주고 있다.


아직은 밝은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쪼이기 위해 해가 지지 않은 건너편 도로 편으로 걸어갔다. 울통 불퉁한 도로를 걸어가며 언젠가 이길도 걷기 좋은 길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건널목을 건너 익숙한 길로 들어섰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산책길의 일부가 되어버린 나이키 운동화는 지난해 3000보의 루틴과 함께 오른쪽 뒤꿈치만 닳아버렸다는 것을 다시 산책을 시작한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고관절 교정이 시급한 상태를 느끼며 헤어지지도 않은 신발은 새로운 신발로 교체되어야만 했다. 며칠밖에 안 신었지만 새로 산 신발이 이제 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는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변화하는 날씨처럼 가벼워진 옷차림과 함께  새로 산 월드컵 운동화를 신고 다시 시작한 3000보의 루틴이 몸에 익숙해 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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