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얼굴을 보지 못한지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주말을 맞아 내가 시골에 내려와 있는 시기에 마침 친구가 내려왔다. 내가 시골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만나러 오겠다는 연락을 했다. 우리는 함께 이 섬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같이 놀고 싸우면서도 언제나 함께였던 죽마고우 사이다. 긴 세월 동안 많은 친구들과는 연락이 닿다가 끊기기도 하고 다시 연락을 하기도 했지만 만나지는 못해도 한결같이 연락을 끊지 않고 지낸 친구다. 내가 일산에서 살던 시기에는 자주 만났다. 운전을 하던 친구는 쉬는 날이면 나를 태우고 다니며 여행을 즐겼고, 만나면 우린 언제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곤 했다.
12시경 우리 집으로 오겠다던 친구가 한참이 지나도 올라오지 않자 전화를 했다. 119를 불렀다는 친구의 말에 걱정이 되어 곧장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지팡이 두 개에 의지하여 걸어 다니시는 친구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돌보는 나이 든 엄마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문 입구에 서 있었다. 어젯밤부터 피곤했다는 친구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의 말을 전하며, 그녀의 증상과 같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무슨 병인가 지레짐작해 보았다.
엄마 덕분에 오랜 병원 생활을 하다 보니 주워 들은 의료지식으로 그녀의 현재 상태를 짚어보며 결석 같다고말씀드렸다.다행히 아버지 생신으로 함께 내려왔다는 친구의 동생이 함께 간다고 했다.
낯선 여자의 등장에 내가 물었다.
"누구야?"
"너 몰라? 내 동생이야"
"너 동생이라고? 얼굴 변했네"
친구 동생의 현재 얼굴을 보며 어린 시절 그 아이의 모습을 찾아보려 애쓰다가 찾지 못하자 다짜고짜 내가 물었다.
"너 성형수술했지?"
사실을 인정해서 인지 친구의 동생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119가 왔다. 119 대원은 산부인과를 가자는 친구의 말에 이부근에는 산부인과가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대성병원으로 향했다.
늦은 오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요로결석이라는 것이다.
집 가까이 한옥으로 지어진 식당에서 멀리서 찾아온 지인 부부와 저녁을 할 예정인데 친구도 불렀다. 저녁식사는 염소탕 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는 몸보신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먼 길을 찾아온 지인 부부를 보내고 집에 있는데 아버지 생신이라며 저녁상을 차려놓았으니 내려오라는 친구의 전화가 왔다. 친구의 부모님과 다섯 명의 자식이 옹기종기 큰 식탁에 둘러앉아 생일 음식을 먹고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도 이렇게 지내셨으면 좋을 텐데' 부러운 친구의 아버지가 오래오래 자식들 효도 받으시며 좀 더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친구와 나누었다.
친구와 함께 늦은 밤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물을 대놓은 논에는 개구리가 울었고, 친구는"우리 동네가 이렇게 좋아야 "를 연신 외쳐댔다. 밤공기는 선선했고 시골 풍경은 고즈넉하며 조용히 어둠이 서서히 내려고 있었다. 이 아른다운 풍경속에 우리 둘만 있었다. 변해버린 시골 풍경 속에서 우리는 함께 놀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의 장소를 하나둘 찾아내기 시작했다.
숨바꼭질을 하던 곳, 공기놀이를 하던 곳, 땅따먹기 하던 장소를 걷고 있자니 동네 곳곳에서 함께 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정다운 수다가 끊이지 않는 밤 산책이었다.
다음날 새벽 일찍 떠난다던 친구는 시간이 늦추어졌다고 알려 주었다. 산딸기를 따고 싶어 하는 친구를 위해 먼저 봐둔 장소로 안내했다. 곧 비가 내릴 듯 산 아래로 안개가 내려안고 있었다. 넓은 관산포에는 무슨 일인지 아직 모내기를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풀조차 베지 않은 논두렁에는 어린 시절 그토록 먹고 싶어도 귀하기만 했던 보리딸이 지천이었다. 친구와 함께 수다를 떨며 산딸기도 따면서 우리는 추억하나를 새롭게 만들었다.
김부각을 사가지고 올라가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해동리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이번에는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시골에 내려와도 늘 집에만 지내고 올라갔다는 친구에게 약산 가이드를 자청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 바다였던 관산포를 지나 바닷길을 달려 득암항까지 가는 내내 친구는 환호성을 질렀다.
"너무 좋다! 너무 좋아! 어디 여행 온 것 같다."
'너무 좋아'를 외치는 그녀의 환호성은 섬을 한바퀴 도는 내내 계속되었다. 굽이 굽이 길을 지나가는 동안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앞만 간신히 보였다. 섬의 멋진 풍광을 눈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그것 또한 좋은 추억이라며 행복해했다. 다행히 김부각을 사고 나니 안개는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행동리에서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제대로 섬마을의 경취를 즐길 수 있었다. 작아진 학교도 작아진 마을 길도, 여동장둥도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는 장소였다.
"잘 가 연락하자"
"즐거웠다. 또 보자"
짧은 인사와 함께 섬마을 한 바퀴 드라이브를 마치고 친구와 헤어졌다. 각자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친구는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 속으로 나는 다시 정적인 엄마의 곁으로 돌아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주일은 오늘의 기억으로 행복할 것"이라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언젠가 다시 우리가 만나면 함께한 추억을 떠올리며 오늘 이날을 추억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