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병원 외래 날이다. 병원 입구에 열 체크를 하는 분들도 없어졌고, 닫혀있던 중앙문이 열려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오른쪽 문을 이용해서인지 발걸음이 오른쪽 문으로 향해졌다. 무인 접수대를 이용해 접수를 하고 피검사를 하러 a동으러 갔더니 대기수가 20명이 넘었다. 예약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왔는데 피검사를 한 후 결과까지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b동 피검사 실로 이동해 보니 대기가 10명 밖에 아니었다. 순서표를 뽑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번호가 되기 까지 기다리면 된다.
"응애 응애"
피검사실 안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댔다. 엄마가 아기를 안고 아빠는 아기를 잡고 있었다. 피를 뽑던 간호사 두 명이 모두 붙어 아기의 몸에서 피를 빼내려고 했지만 아기는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을 참아내지 못하고 몸부림을 치며 울어댄 것이다. 한참을 실랑이를 했지만 아기의 몸에서 피를 뽑아내지 못했는지 아기는 엄마품에 안겨 피검사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아기의 얼굴이 언제 울었냐는 듯 멀쩡한 얼굴인 것이다. 아기가 운 울음은 진짜 울음이었을까 가짜 울음이었을까? 자기 몸에 바늘이 들어가는 것이 싫다는 완벽한 몸부림의 울음으로 이제 드디어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에서 해방되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피검사는 병원에 온 이상 기본 순서였으므로 아기는 대기실 방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피검사를 하던 두 명의 간호사 중 한 명만이 대기실로 들어갔기 때문에 중단되었던 피검사도 다음 순서로 넘어갈 수 있었다.
조금 더 빨리 피검사를 하기 위해 검사 인원이 많지 않은 b동으로 왔는데 피차일반이 되어 버렸다. 대기실로 들어간 아기는 그곳에서도 쩌렁쩌렁 바늘을 피하기 위해 울어댔다. 아직도 간호사는 아기의 몸에서 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인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지만 움직일 수도 없었다. 드디어 아기를 담당하던 간호사가 밖으로 나왔다. 아마 성공하지 못한것 같았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대기실에는 피가 잘 뽑히지 않는 환자들을 위해 피를 뽑는 전담 간호사가 나타났나 보다. 피만 뽑으러 다니는 전담간호사는 흡혈귀라는 별명으로 입원환자들에게 불리웠다. 엄마가 입원해 있을 당시 병동 간호사들이 대여섯 번이나 피를 뽑기 위해 몸에 주삿바늘을 찔러댔지만 결국 피를 뽑지 못했다. 그럴때면 전담간호사에게 콜을 했다. 그렇게 나타난 전담 간호사는 매일 주삿바느로 사라져버린 핏줄도 찾아내 단번에 피를 뽑아가지고 간다.
다행히 두 명의 간호사가 피를 뽑기 시작하자 엄마의 순번은 금세 돌아왔다. 피를 뽑아내는 속도가 빨랐다. 이번 피는 왠지 물컹해 보였다. 피도 뽑았으니 피검사 결과가 나타날 동안 이제 신경과 대기실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엄마의 휠체어를 밀고 신경과로 가는 동안에도 아이의 울음은 계속됐다.
당뇨 검사를 하고 혈압체크를 하고 난 후 기다리는 동안 시골에서 온 전화를 받다 보니 금세 엄마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의사선생님은 조금 더 초췌해 있었고 두 명의 의대생들이 실습을 나와 있었다.
"할머니 잘 드셨나 봐요 "
"네 잘 드시고 계세요"
"피 수치가 낮아졌어요"
"피 수치가 낮아지면 좋은 건가요?"
의사선생님이 말에 몸이 더 좋아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 피 수치가 계속 같은 수치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것이에요"
"아~"
약 처방을 새롭게 해주시면서 의사선생님이 한 말씀하셨다.
"한약, 달인 약, 즙 이런 거 드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
앗 그러고 보니 대변을 잘 못 보시는 엄마를 위해 몇 달째 양배추 즙을 아침저녁으로 드리고 있었다.
"양배추즙을 드시고 계시는데요"
"양배추즙 안돼요. 즙은 안된다고 했을 텐데요. 가끔은 괜찮아요.. 그래도 자주 드시면 안 돼요"
"네.."
대답하는 내 목소리에 죄책감이 약간 실렸다.
와파린을 먹는 환자는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이 있다. 바로 한약이나 녹색 즙 등이다. 일반 채소를 먹는 것은 괜찮지만 많이 먹는 것도 피해야 한다. 그런데 양배추 즙을 벌써 3달 정도를 계속 드시게 했으니 이 수치가 달라진 것도 무리가 인 기었다. 알고 있었던 상식도 몸에 다른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잊어버리게 된다. 건강을 위해서 우선순위가 무엇이 먼저 인지 늘 기억하며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엄마의 병원 외래 진료 날이다.
피를 뽑지 않기 위해 울어대던 아기는 전담간호사의 능숙한 솜씨에 피가 뽑혔을까? 바늘이 들어가는 찰나의 통증만 참아 내면 될 텐데 여러 번 몸에 바늘을 찔러댔을 테니 무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사실에서 나와 울음을 뚝 그치고 아무렇지 않던 표정을 보인 아기이니 잘 이겨낼 것이라 보이며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