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할머니

by 약산진달래

중국 사람들을 '만만디 (느린)'민족이라고 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의 민족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욕일 수도 있지만 '빨리빨리'를 가장 먼저 배운다고 한다. 나는 한국인의 기질을 가장 많이 가지고 태어났는지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 협동을 해서 해야 하는 일에도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속이 터졌다.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그 사람의 속도를 맞추지 못해 트러블을 일으키거나 기다리다 못해 내가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살던 내가 엄마를 돌보면서부터 중국 사람처럼 조금씩 '만만디'로 변해갔다. 엄마는 행동이 느렸고 자칫 잘못 낙상이라는 사고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천천히 해"를 외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를 돌보는 하루하루는 급할 것 없이 서서히 흐르는 강물처럼 조용히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집에 오면서부터 언제부터인가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무슨 일을 하건 아이의 속도를 기다리지 못하고 외쳐댄다.

"빨리빨리 해"

이 외침은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시작된다.

"화장실 다녀왔어? "

아이는 나의 질문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뭉그적뭉그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찾아다니며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것을 늦추기 일쑤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인지 나의 말에 행동으로 옮길 생각 없이 울상만 짓는다. 몇 번을 이야기해도 말을 듣지 않을 때 자동적으로 "빨리빨리"가 나온다. 계속 소변을 참고 있던 아이도 이 말이 들릴 즈음이면 화장실에서 소변을 누고 나온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아이의 뭉그적임은 다시 시작된다.

"세수했어?"

물어보는 나에게 아이는 대부분 세수를 했다고 대답을 한다. 얼굴에는 밤사이 흘린 침이 맹구 잎처럼 하얀 칠이 그려졌고 눈에는 눈곱이 끼여있는데도 말이다. 또다시 나의 "빨리빨리 "가 작동한다. 그렇게 아이는 일어나면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 빨리빨리"가 된다.


아이가 기상한 후 외치는 나의" 빨리빨리" 소리는 밥 먹는 시간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다. 앉았다 일어났다. 의자를 밀었다 넣어다 몸을 비틀었다 다리를 꼬았다 행동만으로 모자란다. 아이의 입에서는 밥을 먹는 내내 쉴 새 없는 시설이 이어진다.

"할머니~ 이거 안 먹으면 안 돼 "

"할머니 호박 세 개만 먹을게"

아직 숟가락도 뜨지 않은 밥상에서 먼저 자신이 먹고 싶지 않은 반찬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밥 먹는 내내 쉬지 않고 움직이며 시지 않고 말을 한다. 그러다 보면 30분은 훌쩍 지나고 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밥 안 먹으면 간식이 없다느니, 안 먹을 거면 밥을 먹지 말라느니 하는 나의 협박 같은 경고에도 아이는 끄덕임 없이 자신의 속도로 밥상을 대한다. 이럴 때면 언제나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만 말하고 빨리 밥 먹어!"


밥을 먹고 옷을 입을 때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옷을 입게 하기 위해 갈아입을 옷을 아이 앞에 내려놓고 옷을 입게 만든다. 그럴 때면 아이는 혼자서 곧잘 입다가도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낸다.

"할머니 이렇게? 이게 앞이야?"

팔이 잘못 들어간다든지 바지에 발이 들어가다 막혀버리면 그때부터 늦장을 부리기 시작한다. 혼자서 옷을 입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혼자 옷 입을 수 있잖아 빨리 입어"

이렇게 아이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빨리빨리" 소리는 끝나지 않는다

"빨리 자"


엄마에게는 빨리 하란 소리를 하지 않는다. 언제나 작은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도 잘했다는 칭찬의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아이에게는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다. 나는 왜 아이에게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을까? 내가 너무 성격이 급해서일까? 맞다. 잠재의식 속에 있던 나의 기본 기질이 아이를 양육하며 재발동 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에게 "빨리빨리" 외치는데 더 큰 이유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할머니에게는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천천히 해도 괜찮다. 그냥 지금 그 모습 만이라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이는 다르다. 좀 더 성장해 주길 바란다. 좀 더 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혼자서도 자신이 해야 할 기본생활 습관을 바르게 익혀주길 바란다. 아이를 향한 기대의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나의 "빨리빨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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