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이 당기는 날이다. 재활치료실 안이 너무 후덥지근하다.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끈적끈적한 땀이 송골송골 이마에 맺혔다. 이럴 때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셔주면 모두 해결될 것 같다.
"선생님 아메리카노 한잔 드실래요?"
엄마의 운동치료 선생님에게 아메리카노를 권해본다. 1층 카페에서 아아 두 잔을 시키고 한 잔은 선생님을 드리고 한 잔은 손에 들었다. 시원한 커피 한 모금 지금 마셔달라고 빨대가 나를 향해 꾸벅였다. 커피를 사 왔으면서도 불구하고 잠시 마음의 갈등이 일었다. 커피를 끊은 지 벌써 3주나 되었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실까 말까 고민도 잠시 이미 사 온 커피이니 한 모금 마셔보았다. 빨대로 빨아들인 커피의 쓴맛이 입안에서 쌉쌀하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예전 같으면 커피 한 잔을 벌컥벌컥 냉수 마시듯 마셨을 터인데 한 모금만 마셨는데 고소하던 커피 맛이 쓴맛으로 변했다. 한 모금이면 됐다. 대기실 보호자분들에게 커피를 권해보았다. 그런데 모두 이미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고 한다. 예전의 나 같으면 커피 한잔 마셨다고 주는 커피를 사양할 사람이 아니다. 물론 커피 양보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한 모금 마신 후 커피를 양보해 보고 싶지만 마시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 치료실 선생님께 종이컵을 한 개를 빌렸다. 물론 돌려주거나 하진 않는다. 종이컵에 아이스커피를 따르고 나머지 커피는 치료실 선생님께 드렸다. 그리고 예전처럼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나는 커피라면 사족을 못쓰는 유형의 사람이다. 아메리카노는 물론 믹스커피도 상관이 없다. 커피라면 하루에 대 여섯 잔은 기본으로 마시고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기본이고. 밥을 먹고 난 후 커피는 후식으로 꼭 챙겨 마셔야 했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몇 잔을 마셔도 잠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커피 애호가는 아니지만 커피 없이는 못 사는 사람 즉 알코올중독처럼 커피 중독인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지인들은 커피 쿠폰을 자주 보내준다. 산책을 하다가 종종 스타벅스에 들려 커피 쿠폰으로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커피를 사서 마시는 시간은 소소한 행복이다. 그런데 남아있는 커피 쿠폰을 모두 소진해 버렸다. 한 번은 아이 옷과 장난감을 나눔 해주신 당근님께 커피 쿠폰을 드렸더니 다음에도 나눔 할 것이 있으면 미리 알려주겠다는 쳇을 보내주었다. 유아 동화책을 나눔 해주신 분께 커피 쿠폰을 드렸더니 나눔을 해주신 분이 도리어 이런 것을 받아도 되냐며 미안해했다. 그리고 나머지 커피 쿠폰과 상품권은 집 청소를 해주고 간 언니에게 드렸다. 커피 쿠폰을 모두 소진하고 나니 이제 정말 커피를 끊은 사람이 된 듯하다.
커피를 끊었다고 하면서도 커피를 다시 마시고 싶은 유혹에 넘어간 적이 있다. 처음은 커피를 끊고 난 후 이틀 뒤이다. 약국에 들렀다가 참지 못하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셨다. 공짜 커피는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였다. 밍밍한 쓴맛이 느껴졌지만 한 모금도 남기지 않고 들이켰다. 커피 맛이 예전 같지 않았다.
두 번째는 커피를 끊은 지 두 주 후의 일이다. 엄마가 마시다만 믹스커피를 아까운 마음에 벌컥 마셨다. 커피 맛이 텁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커피 때문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세 번째는 오늘이다. 후덥지근한 더위를 참지 못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종이컵으로 한잔 마셨다. 진한 게 내린 커피 때문인지 아침에 마신 커피가 오후까지도 가슴을 누르고 있다.
커피를 끊기 전만 해도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찌뿌둥한 정신이 개운해졌는데 이제 커피를 마시니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더 먹먹해지는 느낌이 든다. 내가 커피를 끊은 이유는 바로 두통 때문이다. 차가운 '아아' 덕에 앞머리 쪽은 맑아지는 느낌이 들지만 뒤통수는 더 무거워져 갔다. 두통이 있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끊으라고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일까?
어지럼증이 심해졌을 때도 어지러울수록 커피를 더 마셨다. 머리가 조여 오는 느낌이 들 때도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한 번도 커피를 끊을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어느 날 갑자기 용기를 내었다. 커피의 유혹이 올 때마다 물을 마시다 보니 하루에 1리터의 물을 거뜬히 마시고 있다. 여전히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지만 커피를 끊고 다행히 매일이 힘들었던 어지럼증은 호전을 보이고 있다. 커피를 끊고 난 후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