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에 전화를 하는 조카가 아니었다. 전화를 건 용건은 잠시 동안 아이를 봐줄 수 있냐는 거였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임신 중이던 아이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한다. 벌써 두 주가 지났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완도 누나 집에 그동안 맡겨졌는데 누나 부부가 출근한 후 방학 중인 10살 둘째 아이가 낮에는 딸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개학을 앞두고 있어서 아이 맡길 곳을 찾다가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고모인 내가 생각이 났던 것이다.
“아아앙 아빠~”
아이는 문 앞에서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집안으로 들어오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올해 6살이 된 겨움이는 귀여운 여자아이로 자라 있었다. 생일이
"겨움이 왔네 고모할머니 알지?"
아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는 하지 않고 아이는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쭈뼛거렸다.
“할머니에게 인사해야지 “
“부끄러워”
아빠의 말에 몸을 배배 비틀며 아이는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를 봤을 때가 벌써 2년은 지난 것 같다. 오랫동안 함께 있어 본 적이 없다. 명절에 시골에서 잠깐 동안 만난 기억이 전부였다. 원래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오랜만에 고모할머니를 보자 부끄러웠나 보다. 아빠와 헤어져 낯선 고모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와 떨어져 지낸 것이 완도 고모집에서 지낸 2주 동안이 전부였다. 그동안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기 힘들었을 텐데, 더 떨어져 있어야 하다니 무서울 만도 하다. 아이만 두고 아빠가 가려고 하자 바로 울음을 터트렸다.
"아빠아~ 아앙”
집에 들어올 때부터 아빠 품에 안겨 있던 아이는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아빠가 두 밤 자고 아빠가 올게 그때 아빠랑 신나게 놀자”
두 밤 자고 다시 온다는 아빠의 말에 아이는 안심이 되었는지 확인을 하고서야 아빠 품에서 벗어나 말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증조할머니와 고모할머니 집에 있어야 하는지 아이는 알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를 돌봐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이는 아빠에게 한번 더 다짐을 받아냈다.
"아빠 꼭 와야 돼 알았지?”
“그래 그럼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
“으응~ 아빠 안녕”
아이는 아빠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아빠가 두 밤 자고 오신다는 말에 할머니집에 있을 용기가 생겼는지 아빠와 헤어졌다.
아이는 아직 어렸지만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은 증조할머니와 고모할머니 집에 있어야만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빠는 아픈 엄마를 돌봐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아이는 알고 있었다.
아이가 울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그런데 아빠와 헤어지고 난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집안 여기저기를 훑어보더니 놀고 싶은 장난감을 보물 찾기를 하듯 찾아다녔다. 장식해 놓은 소품들이 하나씩 아이의 장난감으로 변했다. 엄마 물건으로 가득 찼던 방이 갑자기 아이 놀이방으로 순식간에 변했다.
"고모할머니"
나는 갑자기 할머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