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시골집 뒤뜰(뒤안)에는 작은 알맹이가 맺히는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아버지가 심어 놓으신 포도나무였다. 아버지는 밭 곳곳에 과일나무를 많이도 심어 놓으셨다. 그때만 해도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라 뒤뜰의 포도는 보랏빛으로 익어갈 때까지 남아나지 않았다. 그저 청포도이려니 생각했던 시절이다. 뒤뜰의 포도를 보며 이육사의 청포도 시는 애송시가 되었다.
몇 해 전 시골에 주말마다 내려오기 시작한 오라버니는 밭에 과실수를 하나씩 심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심은 나무는 포도나무다. 어린 시절 돼지막이 있던 돌담 바로 옆에 포도나무 한 그루를 심더니 한 해 동안 열심히 가꾸기 시작했다. 비료도 주고 물도 주고 풀도 뽑아주고 나무가 돌담 위로 잘 타고 올라가도록 지지대도 세워주었다. 그 포도나무는 주인의 사랑과 정성을 받아 잘 자라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해 맺힌 포도 열매는 자라는 도중 시들어 버렸는지 먹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도 그 앞에 쌓아둔 비료포대가 그늘을 만들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버렸다. 주인의 관심에서 사라진 돼지 막사의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었어도 모두 시들어 버렸다
오라버니는 갑자기 부모님이 일구던 땅 중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야산의 풀밭이 되어버린 언덕배기 밭에 과실수를 여러 종류 심기 시작했다. 감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무화과까지 심었는데, 올해 복숭아 몇 알을 수확했다. 그러더니 얼마 전에는 그 밭에 야생 다래를 심는다며 산에서 다래나무를 가져와 꺾꽂이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 다래나무 몇 그루는 성공을 할 듯싶다.
뒷밭에도 포도나무 한 그루를 또 심었다. 포도 열매가 맺히려나 했는데 올해 드디어 포도 열매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시골 내려와서 포도 따라"
특명을 받고 시골집에 내려가 포도 수확을 했다. 눈앞에 보인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송이는 많지 않았다. 몇 송이 따고 말겠지 생각하며 포도를 따기 시작했을 때 밭두렁의 돌무더기 위로 무성하게 퍼져나간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송이를 송이송이 잎사귀 아래로 많이도 맺어 숨겨 두었다. 얇은 포도나무에서 포도 가지가 얼마나 많이 뻗어 자라 갈 수 있는지 새삼 대단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동이에 가득 수확한 포도 열매를 소분해서 담으니 김치통으로 4통이나 나왔다. 일단 포도 수확을 했지만 이 작은 포도가 맛이 있을까 의심하며 포도잼을 담글까, 포도주를 담글까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오늘 오후 냉장고에 넣었다가 시원하게 꺼내 먹어본 포도는 달고도 달았다. 작은 포도 알맹이마다 씨앗이 있어서 불편한 감은 있었지만 먹을수록 맛있었다. 요즘 포도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냉장고에서 야금야금 꺼내 먹으면 포도잼이나 포도주를 담그지 않아도 금방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라버니의 달콤한 포도를 먹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포도나무가 떠올랐다. 무더웠던 여름, 어린 나는 입안이 궁금해지면 뒤뜰로 가 포도나무를 관찰하고 했다. 언제 포도를 따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말이다. 알알이 붙은 포도송이 중 포도알의 색이 살짝 보랏빛을 띠기라도 하면 표 나지 않게 따 한입에 깨물어 먹곤 했다. 그 작은 포도 한 알이 입안에 퍼지면 시고도 새콤하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다.
오라버니의 포도를 먹다 보니 어린 시절 뒤뜰의 포도나무가 생각난다. 시고도 달았던 포도맛이 기억난다. 오늘은 이육사의 청포도 시라도 낭송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