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저녁, 빛이 식탁에 머물던 순간

부엌의 온도와 서서히 식어가던 하루에 대하여

by 깊고푸른밤

겨울의 빛은 밝기보다 따스함에 가까웠다.

금방 사라질 것 같으면서도 식탁 위에서는 오래 머물렀다.

그 빛 아래에서 밥은 천천히 식고,

말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하루는 조용한 속도로 저물어 갔다.


지금의 집들은 LED 하나면 대낮처럼 환하지만
예전 겨울의 부엌은 조금 흐렸다.
손으로 돌려 켜고 끄던 백열등은
빛보다 먼저 열이 느껴지는 전등이었고,
그 따뜻함이 부엌의 공기를 천천히 데웠다.
그때의 저녁은 그렇게 차갑지 않았다.


형광등은 존재감을 가진 물건이었다.
혼자 갈기엔 어쩐지 불안했고,
집안에 누군가, 키 큰 남자라도 있어야 마음이 놓이던 시절이 있었다.
막대처럼 긴 등을 조심스레 끼우고 나면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조금 우스운 뿌듯함이 남았다.
그 작은 노동이 겨울 부엌의 밤을 밝히곤 했다.


부엌의 빛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LED처럼 바로 사라지는 빛이 아니라
잠시 머물렀다가
천천히 어둠 속으로 넘어가는 빛이었다.
그 짧은 흔들림마저
겨울의 일부였고
집의 성격을 말해주는 신호 같았다.


식탁 위의 그릇들이 천천히 식어 가는 동안
부엌의 빛은 하루의 끝을 정리해 주었다.
거창한 의미는 없었지만
그 조용한 시간은 이상할 만큼 오래 남는다.
사람의 마음도 그런 식으로
느리게 식고, 천천히 따뜻해졌는지도 모른다.


(이미지출처 : 구글)


Epilogue

이 글은 겨울 저녁의 부엌에서 오래 바라보던 빛을 떠올리며

조용히 흘러나온 하나의 기억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겨울과는 다를 수 있고,

어떤 집에서는 더 환하거나 더 어두웠을 것이다.

그 차이가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순간이 있다.

오늘 우리들의 저녁에도

잠깐이나마 따스한 빛이 머물기를 바란다.



#겨울의빛 #부엌의온도 #식탁의기억 #食思식사 #백열등

작가의 이전글문틈으로 들어오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