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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구석작가 Aisha May 18. 2024

[산티아고] 길의 부름 “잘 찾아왔어!”

- 무슨 이유에서든

몽파르나스역 <Paul> 샌드위치 퍽퍽, 브누아통 하트퐁퐁

바욘 역으로 출발하는 TGV 열차에 올랐다. 별 걸 다 줄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언어인 줄 알았는데, 실제 프랑스어로도 떼제베라니. Train à Grande Vitesse의 준말인데 아주 빠른 열차, 그냥 고속열차. 굳이 프랑스어로 읽어보자면, "트헝 아 그헝드 비테스". 특유의 비음이 섞인 흥흥, 헝헝 소리가 불어 문외한 나에게는 울부짖는 동물의 소리처럼 들린다.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바욘 역. 이곳에서 생 장 피에드 포트 행 열차만 갈아타면 드디어 출발점에 선다.


작은 열차로 갈아타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나와 같은 커다란 백팩을 둘러맨 사람들의 다양한 언어가 들린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제각각인 사람을 한데 모이게 했을까?

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큰 키의 소유자가 서있다.


흔히들 말한다. 이 길은 선택해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선택을 받은 자만이 오를 수 있다고. 왜 이 길을 걷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말한다. 단지 길의 부름을 받았다고. 틀린 말 같지는 않다. 사실 나에겐 오랜 여행 메이트가 있다. 해외의 9할은 그 친구와 함께 했는데, 올해 그녀의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동행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소, 성은 다씨다. 참 쓸데없는 것을 쇠똥구리처럼 짊어지고 다니는 친구다. 신기하게도 다이소가 가져온 물건은 본래의 용도와는 다르지만 요긴하게 쓰인다. 박스 테이프는 생각지도 못하게 터키 잔을 포장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고, 지금도 의문인 네가 왜 여기서 나왔나 싶을 정도로 생뚱맞은 딱풀은 헐거운 멀티 어댑터를 받치기에 적합했다. 맥시멀리스트의 산티아고 길도 궁금했지만, 배려심 깊은 신이 그녀를 애석히 여겨 슬그머니 빠트린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은 여신 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말 그렇다. 감사하게도 힘들 때 나의 짐을 나눌 수 있는 힘이 센! 가진 것도 없어 짐도 별로 없는 하윤언니를 선물로 주셨으니 말이다.


언니님, 여기 내 사과! 받아주길


아기자기한 중세시대 건물과 골목길 사이로 뾰족한 첨탑이 보인다.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모든 필연은 우연을 가장하여 다가온다. 온 우주가 나를 이곳에 부른 느낌에 눈이 그렁그렁해진다. 마치 누군가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잘 찾아왔어. 무슨 이유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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