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리 Jan 12. 2020

#27.

-보통의 배려



 나는 숫자를 잘 읽지 못한다. 한 번에 원하는 곳에 전화를 걸지 못하고 자리가 변하는 숫자 패드의 비밀번호를 여러 번 틀리기도 한다. 기차 시간표를 잘못 읽어 환불한 경험은 물론이고 행인들에게 버스 번호를 물어보기도 한다. 이런 나에게 선생님이 숫자를 메시지로 보낼 때면 숫자와 함께 한글을 같이 적어 보내주신다. [공, 일, 이, 삼... 블라 블라...]


 선생님은 늘 소변이 마린 불편한 자극을 느낀다. 어떤 신체적 질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그런 자극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화장실을 찾는다. 최소 한 시간에 한 번은 화장실에 간다. 영화를 볼 때에도 늘 복도 자리를 예매하고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화장실을 간다. 


 굳이 진단명으로 말한다면야 난독증과 강박증, 빈뇨증 외의 기타 등등을 가진 거겠지만 그런 단어는 필요치 않다. 우리에겐 그냥 평범한 배려일 뿐이다. 


 그저 한 번 더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해주고, 소독제로 손과 휴대폰을 닦고, 화장실의 위치를 확인해두고 숫자를 한글로 읽는 것. 어려울 것이 없다. 맞춰가며 사는 건 모든 관계에서 하는 일이지 않은가. 

이전 18화 #2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