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하루가 말을 걸 때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1. 저의 직장경력은 경찰서, 농협, 대학병원, KT 114입니다.
2. 저는 레스토랑 DJ알바, 소위 LP판돌이를 했습니다.
3. 저는 영화에서 주인공 대역으로 출연했던 적이 있습니다.
4. 저는 지자체 대상 서비스 강의를 나가는 CS강사였습니다.
4가지 보기 중 틀린 것은 몇 번일까요?
정답은 3번입니다.
사내강사를 시작으로 사외 출강을 다녔는데, 강의 시작 전 아이스브레이킹(Icebreaking)으로 많이 활용했던 오프닝이다.
꺼낸 김에 내 소개를 풀어본다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실습을 경찰서로 가게 되었고, 실습 종료 후 채용이 되어 그곳에서 일하며 야간 전문대학까지 졸업하게 되었다.
구조조정이라는 파도를 맞닥뜨리고 예기치 않은 곳으로 흘러 농협으로 이직하게 되었고. 젊었던 피 때문인지, 귀가 얇아 그랬던 건지 윗분과의 마찰을 정면으로 대응했다.(당시는 무식하게 용감했군..)
그 결과 사직서 제출.
주변에 간호조무사로 취업하는 친구들이 있어 자연스럽게 의료업 쪽으로 발을 디뎠다.
서울로 상경해 간호조무사 학원을 등록했고 실습기간에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이 지정되어 그곳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차츰 서울 생활에 익숙해져 갈 즈음 제주에 일들이 생겨 불가피하게 본가로 내려오게 되었고,
지금의 회사 KT CS에 정착하게 되었다.
지금의 회사에 입사 후 사내강사에 도전!
교육사업이 확대됨에 따라 사내뿐만 아니라 사외 지자체 대상 친절교육과 리서치 프로젝트도 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도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법.
교육사업을 접게 되면서 다른 업무를 맡고 있지만 벌써 24년째 근속 중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레코드가게를 운영했었다.
나는 당시 어렸기에 기억이 없지만, 그 영향이었을까 음악을 좋아한다. 그것도 LP의 거친 음질이 좋다.
경찰서 사무직원으로 근무할 당시 저녁 시간을 할애하여 아르바이트를 해보자는 생각에 지역정보지를 보는데 DJ 알바 모집란이 눈에 띄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레스토랑 사장님도 무모한 도전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경력 DJ를 포기하고 날것의 DJ 쓴다는 것은.
어쨌든 나를 포함한 3명의 신입이 뽑혔고 시간대를 나누어 DJ박스를 책임지게 되었다.
단순히 음악을 틀어주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감성적 멘트도 날리고 멘트에 맞는 음악도 선별해서 틀었다. 마이크 음성만큼은 난 자신이 있었다.
DJ박스 안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난생처음 데이트신청 쪽지도 받아보았고,
나를 시험하는 경력직 DJ의 테스트 쪽지도 받아보았다.
옹졸함에 당한 분함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하다.
지금도 나는 선물로 받은 LP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다. 침으로 판을 긁는 거친 ‘지직’ 거림이 언제 들어도 설레는 고백 같다.
정답인 3번 주인공 대역은 오디션까지 보긴 했다. 그것도 당시 명계남 대 배우가 심사관이었다.
“도전은 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을 지탱해 주는 단단한 뿌리가 된다.
거침없이 도전하자!
실패한다면 거름으로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