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아직도 아프다
2012년 7월 나는 아프리카로 향했다.
2010년부터 아프리카에는 '아랍의 봄(Arab Spring)'으로
반정부 시위와 혁명이 끊이지 않았다.
아프리카, 중동 국가 국민들은 민주화를 외치며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내가 향한 곳은 북아프리카 국가 '리비아(Libya)'였다.
'아랍의 봄'으로 혁명이 일어난 국가 중 하나다.
1969년 육군 중위 시절 쿠데타로 리비아 정권을
장악한 사람이 바로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Gaddafi)'다.
영화 '서울의 봄'의 배경인 12.12사태와 유사하다.
카다피는 2011. 10월 리비아 국민에 의해 축출될 때까지
약 42년간 철권통치를 해 온 인물이다.
리비아 국민은 독재정치 타도를 외치며 정부군과 싸우며
약 3만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었다고 했다.
내전이 끝나고 국민들은 시위에 참여하고 실종된 가족을 찾아달라며
임시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리비아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순교실종자부'라는 정부부처를 만들었고
한국 정부에 실종자에 대한 발굴과 신원확인 사업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카다피가 죽고, 내전이 끝난 9개월 후,
우리는 리비아에 도착했다.
2년간 그곳에서 리비아 정부와 같이 일했다.
당시 국민 1 사람당 평균 5자루의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변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내가 있던 2년간 '순교실종자부' 장관이 5번이나 바뀌었다.
가족을 잃은 국민들이 거의 매일 장관실로 찾아와
하루빨리 실종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달라고
엄청나게 요구했다.
이를 이기지 못하고 사퇴하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내전 이후 사망 또는 실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가족들은 애가 타고 가슴이 탔다.
그냥 앉아 마냥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날마다 마당 한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며
실종자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을 잃은 그들의 아픔은
시간과 장소, 국가와 무관하였다.
세상 어디에 있든 가족을 잃은 아픔은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