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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자 Dec 16. 2023

타라와, 왜 그 섬에 갔을까?

그들은 아직도 아프다


타라와는 태평양 길버트제도의 섬으로 키리바시공화국의 옛수도이자 태평양전쟁의 격전지 (출처: 네이버 이미지)


2018년. 행정안전부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행안부에서 타라와섬에 있는 한국인 전사자를

송환하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미국의 협력 요청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행안부, 외교부 관계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 국방부 측 관계자들과 전사자 국내

송환 절차와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로부터 5년 후, 2023년 12월.

타라와섬에 잠들어 있던

조선인 전사자 한 분이 신원확인되어

80년만 고국으로 돌아왔다.


기록에 의하면, 타라와섬은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쟁 중 

1943년 11월에 벌어진 미국과 일본과의 전투지역이다. 

당시 이 섬을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었으나, 미군의 상륙작전이 진행되었고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군 1,693명, 일본군 4,100명이 전사했다.

이 중 일본군에 끌려가 사망한 조선인 1,117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과 일본이 함께 타라와섬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는 한국인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을 미 측에 제기하여

미국의 지원을 통해 신원확인과 유해를 송환하는데 합의했다.


일본은 미국과 달리 유해를 발굴한 후, 뼈에서 DNA시료만 채취하고

나머지는 모두 화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해를 발굴하더라도 현재의 과학적인 방법으로는

일본인과 한국인을 구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기에 화장한 유해 중에 한국인도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또한 유해를 화장하게 되면 한국인으로 신원이 확인된다 하더라도

그 뼈조차 본국으로 올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나는 미국 측에 유해를 화장하지 않도록

일본 측에 한국 입장을 전달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일본으로 끌려간 것도 모자라

일본군의 군무원, 군인으로 전쟁에 참전했다.

자기 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의 군인으로 말이다.

지금 조차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타라와라는 섬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 잠들었다.


늦게나마, 그 첫 번째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아직 그 섬에는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고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


그 가족들은 머나먼 타국에 매장되어 있는 뼈를 보지도 못하고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떠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머리속 지우개처럼 

그런 가족들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산다.


우리 근현대사의 고통의 발자국 속에서 잠들어간

그들의 흔적은 잊혀지고 있지만,


우리 속에 그들은 여전히 아픔을 안고 곳곳에서

타는 가슴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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