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아직도 아프다
사망한 사람의 가족을 찾는 과정은
자연재해, 건물 붕괴, 전쟁 등
사망의 원인에 따라 방식과 속도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먼저, 인체의 훼손과 부패가 많이 진행될수록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의 소실로
그 가족을 찾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는 비례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
둘째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최초 사망한 장소에 있던 사체가
위치가 변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사람이 사망하면 부패현상이 급격히 진행된다.
통상 사망 후 인체가 매장되지 않은 상태 즉,
지표면에 놓인 상태에서 1주일 동안 부패한 정도는
물속에 수장된 경우의 2주일,
땅속에 매장된 경우의 8주 정도의 상태 또는 속도와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장하지 않고 공기 중에 노출된 인체는
일반적으로 다른 경우보다 더 빠르게 부패한다는 의미다.
부패가 진행됨에 따라 신원확인 단서가 되는
신체 표면의 개인적인 흉터, 문신, 수술자국이 없어지고,
DNA 시료를 채취할 수 있는 부위도 줄어들며,
사망의 원인을 찾기도 힘들어진다.
시간이 더 오래 경과하면 결국 인체는
가장 강도가 강한 조직인 뼈와 치아만 남게 되는 것이다.
실제 시대적으로 최근 사건인 6.25 전사자의 뼈를 예를 들면,
그 보존상태가 오히려 조선시대 분묘에서 발굴된 것보다 상태가 좋지 못하다.
조선시대는 석회를 사체 주변에 뿌려 벽을
만들면 회곽묘의 형태가 만들어져 외부로부터 사체가 있는
내부로 공기가 차단되고 벌레, 동물들의 침범을 받지 않게 된다.
따라서, 시대적으로는 6.25 전쟁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사체에 대한 훼손과 손상이 적기 때문에 뼈는 더 잘 남아있다.
하지만, 전사자들은 대부분 제대로 매장되어 있는 경우가 드물다.
전사 후 땅 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거나
매장되더라도 전투 중이라 시간이 없어
매우 얕은 깊이로 매장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음은 사체의 위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최초 사망지점에서
위치가 바뀌게 되어 몸체 전체를 찾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결국, 사건사고 발생 후 세월이 오래되면 그 가족은 온전한 상태의
희생자의 몸을 돌려받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전투 중 상황을 가정해 보면
우리나라와 같이 산이 많은 지역에서 전투는
산중 또는 고지전이 많다.
전투 후 사망한 전사자의 사체는 최초
쥐와 같은 작은 동물에서부터 늑대, 살쾡이 같은 산짐승들까지
훼손과 손상을 많이 주게 되고
심지어 사체를 뜯어가 몸체가 산속 여기저기 분리되기 때문에
최초 장소에서부터 이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후 태풍, 폭우가 발생한 경우, 남겨진 사태는
산 아래로 휩쓸려 내려가거나
절벽이 있는 경우, 절벽 아래로 떨어져 계곡, 물속으로
이동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엔 나무뿌리들이 사체 또는 뼈 주변으로 확장되어
뼈를 감아 나무의 기둥(본체) 쪽으로 끌어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나무뿌리가 사체 또는 뼈에서 영양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실제 전투현장의 나무뿌리 주변을 파보면
나무 아래로 뼈들이 상당히 모여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대량재난의 어떤 경우라도
시간의 경과는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의 감소와
사망자의 사체 훼손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아들, 아버지, 형제들은 젊은 나이에 나라를 지킨다고 나갔다가,
혹은 우리 가족이 멀쩡이 집을 나갔다가 어떤 참변을 당해
시간이 지나도, 세월이 지나도 그 몸조차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가족의 몸이 산속에, 땅속에, 물속에
그대로 남겨져 있다면
남아있는 유족의
고통이 쉬이 사라지고 또 잊힐까?
남겨진 유가족이 늙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내 죽기 전에 그 뼈만이라도 한번 보고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