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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자 Nov 17. 2023

선감도. 아이들이 그곳에 왜 갔을까

그들은 아직도 아프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 있던 섬.


'속세를 떠나 선경에 살며 구름과 학을 벗 삼아 지내던 사람이 내려와 

맑은 정한수로 목욕을 했다' 하여 선감도라 불렸다.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역사적으로 큰 아픔이 있었고 우리는 지금도 잘 모르고 살고 있다.

바로 '선감학원 희생 사건'이다.


사실 나도 몇 년전 경기도청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진 몰랐다.

'선감학원 희생자에 대한 유해발굴과 추모사업'에 대한 자문 요청을 받았다.


'선감학원 사건'은 

일제시절 1942년 4월. 

조선총독부는 태평양 전쟁 등 군인을 양성한다는 명목으로  이 선감도에 시설을 만들었다.

'선감학원'이다.

해방 후 이를 경기도가 인수하였고 1982. 9. 30. 까지 운영되었다가 폐쇄되었다.

약 40년간 부랑 아동들의 교육, 수용시설로 이용되었다.


수용된 아동은 약 5,0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더욱 황당한 것은

엄연히 부모도 있고, 살고 있는 집이 있고, 죄를 저지른 사실이 없었음에도 

옷이 남루하거나 주소를 모르면 이곳으로 끌려오는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곳에 구금되어 강제 노동, 학대가 이루어졌고 

이를 견디다 못해 죽거나

섬을 탈출하여 육지로 수영하다 죽기도 하였다고 한다.




참 어이없는 사건이다.


어려운 시절, 아이를 키우던 부모들

자신도 모르게 아이가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섬으로 끌려갔다.

그것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과거 국가 공권력의 희생사건이었으므로

굳이 알리고자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2020년이 지난 최근에야 진화위(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가

있었고, 경기도청이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 황당하다.

전쟁하다 죽은 것도 아니다. 단지 국가 공권력에 희생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억압 시절, 해방 후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절,

강압적인 군부 시절이 맞물려 일어났던 일이다.


세상은 그렇다. 지금은 우리 삶이 존중받고 있지만,

사회와 국가가 어려워지고, 불안해지고 내전과 전쟁이 나면

그 시절은 다시 온다. 역사의 순환고리다.

가끔 잊고 살거나 아주 잊고 산다.


바쁘고 사는 게 쉽지 않은 현재의 세상이라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시절이 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안정된 사회 기반과 환경, 국가를 만들어주는 노력을 다하고

떠나는 것이 먼저 태어난 세대의 역할이자 의무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심정은 가히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역사적 사건이라고 치부하기엔 아픔이 너무 크다.

그 유가족들의 아픔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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