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낭비하는 방법에 대해
휴가원
아침에 나왔다가
밤이 되어야 들어가야지
한나절을 걷다가
가끔 멈춰 물어봐야지
인생을 낭비하는 방법을
더는 소중해지지 않을 때까지
멈춰 머무를 수 있는 끈기를
새에 꽃에 바람에
여전히 도시에 남아있는 이유를
그래서
오늘 하루 쉽니다
얼마 전 휴가를 낸 것은 책을 읽기 위해서였다. 비어버린 머릿속에 책을 밀어넣으면 다만 조그만 충만함이라도 느끼며 내 삶에 대해 긍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저 단순히 책이 많을 것 같아 파주의 출판단지로 갔다. 수십 만권의 책이 손 닿을 수 없는 까마득한 곳까지 쌓여있어 책의 무덤이라고도 불리는 거대한 '지혜의 숲'.
그곳은 내가 원하던 충만한 지식의 창고였으나 나는 어딘가에 안착하지 못했다. 이책 저 책을 옮겨 다니다 채 한 문단을 다 읽어 내려가지도 못하고 다른 책은 없을까를 기웃거렸다.
"이 책은 오늘 읽기에는 너무 가벼워"
"다 읽지도 못할 것 같은데 더 짧은 책을 볼까"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휴가의 남은 시간과 그 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효용가치를 판단하다가
왜 쉬는지 조차 잊어버리게 되었다.
휴가 때 조차 다른 방식의 삶을 꿈꿀 수 없는 도시 생활자의 삶이 웃프기만 하여 책 읽기를 멈추고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했다. 아무런 목적지도 방향도 정해놓지 않고 그저 시간을 낭비해보기로 했다.
출판단지를 이루는 노출 콘크리트 공법의 건물들 사이 골목에는 지독히도 사람이 없었다. 쌀쌀함과 강한 햇볕이 공존하는 의뭉스런 초봄의 날씨 속에 간간이 꽃가루가 휘날렸다. 걷고 쉬기를 반복하다 들른 어느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 마셨다. 멀리 서는 웨딩촬영을 나온 신랑 신부가 어색한 포즈를 잡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휴가를 기념하며 기억할만한 순간은 없었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 빈 공간으로 남겨둔 시간
진짜 휴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