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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Jul 28. 2020

추억 한 스푼_ 휴가 @ 베냉 4

혼자 여행했고, 또 워낙 관광객이 많은 나라가 아니고, 삐끼를 피한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 이야기.


# 세계 일주하는 홍콩 부부


- 위다의 게스트 하우스 둘째 날. 내 옆방에는 홍콩에서 온 8개월째 세계 일주하는 부부가 묶고 있다. 처음엔 본토 중국인인 줄 알고, 사실 겉모습만 보고 어떻게 본토 중국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마는 - 그들이 왜 여기 있을까 약간 궁금하긴 했다- 말 걸어볼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덥고 어두운 방이고, 숙박객은 나뿐이었기에 아줌마가 자기도 궁금했는지 저녁때가 다 돼서 내 방문을 두드렸다. 


- 아줌마는 내가 한국사람이란 걸 알고 반가워하고,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에도 좋아하면서 동시에 숙소 매니저가 자기들을 중국사람으로 소개했다는 데 약간 분개했다. 전 세계에서 중국인들이 유별나게 여행하는 행태를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나도 아프리카 와서 가장 많이 듣는 Chionois 그리고 Ching Chang Chong 같은 말도 안 되는 중국말하면서 나를 쫓아오는 사람들이 애 어른 할 거 없이 너무 많아서 싫기도 하다. 처음에는 나 중국사람 아니야 하고 굳이 말해줬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그 말을 할 수도 없고, 한국인이 존재하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 암튼 8개월째 여행 중이라니 나이도 꽤나 있어 보이는 중년 부부인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 여행자들은 예산이 빠듯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 숙소에 머무는 것 같기도 했다. 밥도 안 사 먹고 비스킷이나 이런 걸로 때우고 말이다. 서아프리카는 관광 인프라가 잘 안되어 있고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 관광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아프리카에서는 세네갈이 날씨도 그렇고 관광 인프라도 그렇고 풍경도 그렇고 제일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작 나는 세네갈은  가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모두 서아프리카에서 관광은 세네갈이라고 했는데, 나는 왜 베냉으로 온 걸까? 아줌마는 자신의 세계여행 블로그 주소를 적어주면서 꼭 확인해보고 메시지를 올려달라고 했다. 

베냉 위다에서 먹었던, 가장 맛있던 음식. 물고기. 과감하게 손으로 뜯어먹어야 한다.  


# 에어비엔비 호스트 아저씨의 여자 친구

- 다시 코토누로 돌아와서는 에어비엔비에서 지냈다. 아저씨는 65세의 은퇴한 프랑스 사람인데, 바다가 바로 보이는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 별다른 일 없이 지내시는 것 같은데 소일거리로 에어비엔비를 하시는 듯.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지불한 가격에 비해- 1박에 16유로 정도 줬다- 집도 너무 좋고 아저씨도 너무 친절하다. 내 방에서 바다가 바로 보이고, 밤에는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든다. 방이 2칸인데 마스터 베드룸을 손님방으로 주고 아저씨는 햇볕도 안 드는 방에서 지내신다. 아저씨가 매우 쿨하셔서 마음이 편하다. 불어를 정말 잘하면 쉴 새 없이 아저씨랑 떠들 수 있겠는데- 노인네들 특징이 말씀이 많으시다는 것- 그렇지 않아서 아저씨가 약간 아쉬워하시는 듯.


- 아저씨는 나한테 코토누에서 뭐할 생각이냐고 물어보시는데, 나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조용히 있고 싶을 뿐이었다. 자기 여자 친구가 하루에 만 프랑만 내면  택시 대절한 것처럼 여기저기 운전해서 데리고 다닐 수 있다며 은근히 상품을 파신다. 만 프랑이면 그리 비싸지도 않고 나도 여기서 모또 타는 데 지친 터라, 오케이 했다. 


베냉 여행의 유일한 기념품. 비싸긴 했지만 잘 산 듯...

- 그의 여자 친구는 올해 딱 서른 살이 된 싱글맘이다. 딸이 11살이니 19살에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인데 덩치가 나보다 더 작아서 안쓰러울 정도이다.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혼자 아이를 낳아서 기를 생각을 하는지, 아프리카 여자들은 대단하다. 그리고 아프리카 남자들은 속된 말로 쌍놈(!)들이 많다. 내가 아는 아프리카 싱글맘들의 스토리는 대부분 다 비슷하다. 사랑에 빠져서 피임 따위는 하지 않고 임신을 했는데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무능력하고,  여자 등골 빼먹으려고 하고 결정적으로 아이를 양육해야 할 때는 나 몰라라 떠나버리고 결국 엄마는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사람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지만 대충 스토리는 거의 비슷하다. 



-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는 젊은 남자 싫고 아프리카 남자가 싫어서 자기 나이의 2배나 되는 프랑스 할아버지를 만난다고 했다. 만난 지 몇 년이 된 듯하고, 그들은 최소한 그들끼리 행복하게 보였다. 그 11살 딸도 할아버지를 잘 따르는 것 같았고…적당한 거리를 지키면서도 단단한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계에 대해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건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들이 좋다면 되는 거지 사회적 규범 이런 건 그냥 도덕률에 불과한 것 같다.  


# 끝. 

다시 베냉을 갈 일은 없을 것 같고, 그곳을 관광하러 가는 한국인도 별로 없겠지만, 많이 지쳐있던 내게 바다 그리고 쉼을 선사해 준 곳이 베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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