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생 신도시 전세로 사는 아지의 임신이야기
001. 홍양이 왔구나
요사이 생리 주기가 6주(정확히 하면 41일)로 맞춰진 편이다. 이틀 전 예정일에 어김없이 생리가 시작되었다. 인터넷카페에서는 사람들이 생리를 홍양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홍양'이란 붉은색 숙녀라는 뜻인가?) 피가 비치고 허리가 뻐근하고 가슴이 찌릿한 PMS가 있을 때에 혹시나 임신일까 봐 착상혈과 임신 극초기 증상에 대해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홍양이 왔음을 알았을 때 조금은 기분이 이상했다. 이번 생리에 대한 느낌이 평소와 달랐던 이유는 나에게 임신에 대한 마음이 처음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 8년 만에 우리 부부가 진지하게 아이에 관해 생각한 시기였기에 이번 생리는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남편 '조'와 나는 2013년 처음 만나 2016년 결혼했다. 2024년 올해는 만난 지 11년, 결혼한 지 8년이 된 해이고 만 7살 된 강아지 '달'을 키우는 반려가족이다. 한국나이로 나는 36살, 조는 두 살 많은 38살이다. 20대에 우연한 만남으로 연애를 시작하여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여전히 투닥대고는 있지만 서로의 삶의 깊이 스며들어 살아가고 있다.
당시 우리의 신혼생활은 조가 살던 경기도 안양의 원룸 오피스텔 월세(보8000만원/월 30만원)에서 시작했다. 광명 이케아에서 산 가구들을 이고 지고 와 diy로 열심히 조립하며 완성하곤 뿌듯해했었다. 원룸 생활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결혼 6개월 만에 서울 문정동의 신축 오피스텔(거실, 부엌, 침실과 드레스룸,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었다)로 전세를 옮겨가며 진정한 신혼집이라며 꾸미기에 열정을 다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부부가 막 30대가 된 그 당시 박근혜 정부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시기였고 조가 부동산에 관심이 생겨 수도권 이곳저곳의 분양권을 알아보기 시작했었다. '미친 집값'의 시대가 막을 열고 코로나버블과 자산상승이라는 거대한 자본증식의 기차에 올라타고자 한 우리 부부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부동산 이야기는 나중에 한번 풀어볼 수도- 안양의 원룸에서 시작한 우리는 자가와 세를 포함하여 8년간 서울 문정, 용인 기흥, 성남 산성, 송파 잠실까지 여러 번의 이사를 거쳐 현재 인천 서구에 위치한 검단신도시의 40평대 아파트에 전세(전세대출 없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기서 집값이 더 오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소유하던 부동산(3주택 중 2개)을 매각하고 아파텔 하나만 월세를 주고 있으며 거주로는 무주택 자격의 전세 세입자의 길을 선택한 상황이다. 20대에 결혼하여 신체적으로는 가임황금기에 아이를 미루고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타고 싶었던 우리는 지금까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경험이라고 하자-를 얻은 것 같다.
만 26세에 결혼한 직후에 나는 처음에 아이는 자연스레 가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20대에 빨리 낳아서 빨리 키워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조의 입장은 달랐다. 양가에서 크게 도움받은 것 없이 시작한 상태에서 아이부터 덜컥 낳기보다는 경제적 안정과 부모가 될 내적인 성숙의 준비를 먼저 이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조가 단호한 편이었기에 나도 그의 의견을 존중했고 결국 우리에게 아이는 일단 미루고 보는 과제, 불확실한 미래의 일로 차치하게 되었다. 둘이 사는 와중에 달을 만나게 되었고 강아지의 보호자로서 주어지는 책임감과 키우면서의 행복, 보람 등이 양육이라는 정서적 만족감을 꽤 채워주었다. 그렇게 2세에 대한 간절함은 미뤄졌고 시간은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었다. 내 나이는 올해 생일이 지나면서 노산의 기준인 만 35세 이상이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도 슬슬 2세 생각해야지.”
올해 초쯤 조의 말에 짐짓 놀랬다. ‘이런 말 절대로 괜히 하는 사람이 아닌데.’ 사람 기분을 맞춰줄 법도 하지만 조는 나에게 웬만해서는 ‘입에 발린 말'을 안 해준다.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도 않는다며 최대한 언행일치 하겠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가끔은 와이프로서 서운하기도 한데 그래도 사람이 진중하니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산다. 그런 그가 2세에 관한 이야기를 이 정도 명확하게 한다는 것은 그의 마음이 진심으로 많이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구나 싶었다.
작년에 있을 것 다 있던 잠실을 떠나 인천으로 이사오며 우리 사이에 일이 많았다. 스스로가 결정한 일이었지만 자산과 부채를 정리하며 약간은 쫓기듯이 주변부로 밀려난 것 같아 처음에는 후회도 하고 불안해 했었다. 다행히 지금은 서울과 다른 조용한 신도시의 분위기에 잘 적응한 것인지 우리 둘 다 점차 마음의 평화를 찾은 느낌이다. 조는 회사에서 자리도 잘 잡아가고 있고 자산을 정리한 바람에 부채도 줄어 경제적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만 쳐다보며 치열하게 사는 것 대신 2세 생각을 할 만큼 그의 내적 평화가 커진 것이다. 돈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생활비 등으로 싸울 일도 적어지고 서로 배려가 늘고 사이가 좋아진 점도 임신생각에 대해 긍정적으로 작용한 듯 했다. 나는 줄곧 내심 아이를 원하는 편이었지만 경제적 부담을 조가 홀로 지니고 있는 바람에 그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단호했던 그도 어느새인가 마음을 슬며시 열게 된 것일까. 주변에서도 크게 간섭하지는 않지만 가족과 친구들 또한 우리부부의 2세 소식이 들릴 날을 기대하며 꽤나 응원해주고 있다.
이번달에(물론 배란기가 아님은 알았지만) 2세에 관하여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날을 갖게 되었고 임신이 쉽게 되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여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가게 될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생리예정일이 다가오는 그 일주일의 하루하루가 긴장되었다. 결국은 홍양이 찾아왔고 증상놀이로 끝난 해프닝이었지만 임신에 대한 과정은 앞으로 스토리로 계속 풀어볼 예정이다.
자궁근종도 있고 다낭성난소증후군과 수족냉증으로 평소 생리통이 극심한 편이어서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인데 희한하게 이번 생리는 진통제 한두 알로 버틸 정도로 다행스럽게 지나가고 있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혈액순환에도 신경 쓴 효과일 수 있겠지만 나의 몸이 아이를 준비하기 위해 조금은 도와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아이가 생겨도 너는 변함없는 우리 개아들이야."
우리는 연말 여행을 2세를 위한 약속의 그날로 계획했다. 앞으로 3~4개월간은 임신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물리적 노산의 나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잔병들도 있고 자궁상태가 퍼펙트는 아니어서 걱정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조도 최근 금연을 시작했다. 당분간은 홍양과 인사하겠지만 빠르면 내년 초쯤에는 뱃속의 아이를 만나 3명에서 4명이 된 반려가족이 된다는 설레는 상상을 가져보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