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아주 나이 많은 누나와 막내 동생!
맞벌이 부부, 일하는 엄마에게도 레벨이 있다는 기사를 어딘가에서 봤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흔히 말하는 조손 육아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손주를 케어하는 경우)는 황제 워킹맘이라고 한다.
급할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경우가 다음 단계, 그 조차 부재하여 부부가 오로지 아이를 케어하며 직장을 다니는 경우는 그 다음 레벨이라고 한다.
나는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1개월을 제외하고는 한달도 쉬지 않고 직장을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육아휴직 12개월을 쓰지 뭐 잘 보이겠다고 11개월을 쓰고 복직했나 싶다.
나의 아들 라플랑은 아예 어릴 때는 외할머니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하원 후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돌보미 선생님이, 초등학교 입학 1년전쯤부터 다시 외할머니가 돌봐주고 있다.
아이가 아프거나 급한 일이 생길 때 누군가 대신해주니 어쨌든 황제 맞다.
어릴 때를 생각하면 가정경제가 항상 불안정했다.
아빠가 사업을 하며 잘 될 때도 있었고 안되어 돈을 거의 못 벌 때도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일을 하셨고 나처럼 편하게 앉아서 하는 일도 아니었다.
남동생과 나는 둘이 있는 날이 많았고 특별히 음식 투정을 하지도 않고, 학원을 보내달라고도, 옷을 사달라고도, 친구 만나게 용돈을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나의 이상형은 "매달 고정급을 벌어오는 남자"였다.
역시 나는 근로소득의 노예가 될 조짐이 많았다.
당연히 나도 "고정적으로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재취업을 못하는 회사 선배들을 보면서 절대 그만 둘 수 없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내가 버는 월급의 대부분을 지출하게 되더라도 "아이가 클 때까지 나의 경력을 유지하는 비용"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로지 그 생각으로 버텼다.
지금은 떠난 그 조직이 뭐라고 충성심도 컸고 그곳에서 꽤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많았다.
참~ 나도 어렸다!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는 장점은 아주 많으니까 고충만 몇가지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모든이에게 100% 만족은 없으니까 살짝 나의 고충을 털어놓기로 한다.
"다 우리 라플랑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 똑같애!"라고 스스로에게 백번 얘기하기
사랑하는 마음은 다 똑같지만 표현하는 방법과 관점이 다른게 좀 문제다.
어쨌든 낮시간은 대부분 할머니와 아이가 있다보니 육아에 대한 많은 부분은 할머니 위주이다.
보내고 싶은 학원이 있어도, 다른 친구와 놀게 하고 싶어도, 유행하는 육아템을 사주고 싶어도 할머니 눈치랄까 의미를 생각해야한다.
어차피 내가 회사 때려치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방법이 아닌 그 마음을 보기로 여러번 결심한다.
그래, 우리 어릴때도 다 저렇게 잘 컸어.
경제적으로 생각보다 여유롭지 못하다.
내 월급에 꽤 큰 비중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모르는 다른 사람을 주는 것보다 믿을 만한 양육자이자, 어차피 우리엄마에게 주는 거니까 괜찮아.
그리고 애초에 사회 경력을 유지하는 기간이자 비용이라고 생각했으니 넘어가자~
또 엄마도 장보고 아이 장난감이랑 책도 사주고 하시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허리 디스크 문제로 무급 병가를 쓴 얼마전, 적어진 내 수령금액의 반 이상의 엄마에게 드리고 나니 어딘지 아쉬운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물론 엄마가 덜 보내라고도 하셨고 병원비도 많이 나와 굉장히 고민했지만 애초에 정해진 금액만큼 드리는 대승적 결단을 했다.
잔소리 잔소리 그리고 살이 안 빠진다.
가끔 친정에 며칠 놀러가면 살이 쪄서 온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내가 왜 살이 안 빠지는지를...
내가 어릴 때부터 맛있게 먹는 음식을 엄마가 너무 잘 안다. 그리고 맛있다.
거기에 나의 식탐까지 어우러지니 몸의 기초대사량도 떨어지는 요즘 더 살이 찌고 있다.
어지간히 독한 마음을 먹기전에 빼기 어렵다는 느낌이 뙇!
여러분이 친정에 가서 맛있지만 부담스럽게 음식을 먹는 그 기분...
그게 저의 매일 저녁시간입니다. ㅠㅠ
엄마는 이 나이까지 일하는 딸을 안쓰럽게 생각하신다.
그런데 안쓰러운건 안쓰러운거고 잔소리는 잔소리인 것 같다.
엄마도 엄마 나름대로 참고 또 참으시겠지만 나도 이제 나이가 든 만큼 엄마의 감정 상태가 샅샅이 느껴진다.
'그래 예민하고 눈치 빠른 내가 잘못이다'
라플랑에게 나는 늙은 누나 같기도 하고 또하나의 아빠이기도 할 듯
라플랑과 나는 엄마와 아들보다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매 느낌도 난다.
특히 아이가 커가는 요즘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외할머니가 엄마이고 나는 큰 딸, 라플랑은 막내아들 같은 느낌이랄까.
어느 책에서 말하길 조손육아를 하게되면 모자보다는 남매은 관계가 형성된다는데 그 구절을 읽자마자 어떤 의미인지 알겠더라.
반발자국쯤 살짝 발 빼고 있는 아이 아빠의 느낌이 이런 걸까 싶다.
내가 조직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를 두고 나와서 일하는 엄마"였기에 가능했다.
어딘지 미안한 친정엄마, 어딘지 아쉬운 라플랑, 어딘지 불편한 남편이 조금씩 희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때문이다.
수고비를 드린다고는 하지만 딸이 야근하며 벌어오는 돈을 받는 엄마의 마음은 편치 않으시다.
오죽하면 남편이 벌어온 돈은 앉아서 받고 자식이 벌어 온 돈은 서서 받는다고 하지 않나.
아무리 엄마랑 똑같이 생긴 할머니가 잘 봐준다고 해도 아이에겐 항상 나에대한 그리움이 있다.
저녁시간과 주말엔 내 옆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출근 하지 말라는 말 한번을 하지 않는 라플랑을 보면 마음이 찡하다.
그래서 더 이 시간을 헛되지 않으려 버티고 마음을 다잡은 것 같다.
덕분에 종종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울 수 있고 회식도 마음 편히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직원이었다.
그리고 자신감이 없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한번 끊어지면 절대 다시 사회에 나올 수 없다는 믿음이 컸다.
그런데 요즘 나의 이런 생각이 조금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육아를 하면서 조금 덜 인정 받아도, 조금 돌아가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또 집중 육아기를 마치고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재테크를 본격적으로 해 볼 수도 있었다.
나의 이런 편견을 깨주는 주변 엄마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멋지고 물개박수를 쳐주고 싶다.
내가 그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된다면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하는 이유가 나의 편협한 선입견을 깨준 존경의 표시이다.
11년전으로 돌아가도 나는 어쩜 그냥 워킹맘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용기가 없었고, 또다른 길을 전혀 알지 못했고 그 때 나의 그릇과 수준이 그거니까.
그냥 각자에게 더 편한 옷이 있는 것이라고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