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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말가 Mar 11. 2021

곱단이

- 각색 소설 -

      

 내가 봐도 내 인물, 참, 개도 안 물어가게 생겼다. 이마는 훌떡 까지고 양미간은 벌어지고, 거기에 성격도 아기자기한 맛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인물 중에 제일 거슬리는 건 마중 나온 입이다. 입보다 더 한 건 말할 때마다 세상 구경하겠다고 자꾸 튀어나오는 윗니다. 그렇다고 코가 멀쩡하기를 한가. 내 코는 비 오는 날에 머리 숙이지 않으면 영락없이 빗물이 들어가는 예의 그 들창코이다. 어무이를 원망하랴 아바지를 원망하랴. 이런 개망한 얼굴 가지고 그래도 용케 시집을 왔다. 얼굴 한 번 보고 떠맡겨지듯 서방의 집으로 보내졌다. 나 같은 얼굴을 받아주는 것이 수상하여 어딘가 부족한 사람인가 싶어 팔다리를 살펴보았더니, 다행히 사지는 멀쩡했고 눈도 보고 말도 하고 머리도 바보는 아닌 평범한 동네 총각이었다. 그럼 서방 얼굴도 나처럼 영 못 봐줄 못난이인가- 그건 아니다. 하지만 지나는 길에 눈길 한 번 더 주고 가는 그런 매끈한 얼굴도 아니다. 그랬다면 나 같은 걸 받아 줄 리가 없지.


 내 얼굴이 이름과는 다르게 이 모양인지라 서방의 살가운 애정 따위는 기대도 않는다. 조금 놀림당하고 쥐어 살긴 하지만 내쳐지지 않고, 가뭄에 콩 나듯이 마음에 없는 입바른 소리도 해주는 맛에 같이 살고 있다. 나라 잃은 가난한 시골 부부가 사는 게 다 그렇지. 그저 살면서 내 새끼나 많이 쌓아놓고 싶은 마음만 한우물이다.      

 뱃속에 우리 똘똘이가 들어서고 똘똘이를 낳을 때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꼭 자식이 어미를 닮으란 법은 없으렷다. 나는 쥐었다 놓은 개떡같이 생겼어도 우리 똘똘이는 아주 잘 생겼다. 내 배 아파 낳아놓고서도 가끔 이놈을 내가 낳았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비록 먹고 돌아서면 또 먹겠다고 달려드는 모양새가 저 놈이 걸신이 들렸나 싶기는 하지만 나에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금쪽같은 똘똘이 덕에 내가 그나마 서방에게 큰소리를 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똘똘이를 낳기 전에는 서방이 집에 들어오면 행여 구박이라도 받지 않으려고 굴러다니는 밥에 나물 한 접시라도 한 상 차려내며 반겼다. 서방이 방바닥에 그냥 누워버리면 내 얼굴 때문인가 싶어 마음 졸이며 방 한쪽에 쪼그려 앉아 소리 없이 입을 삐죽 대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살짝 틀어 앉아 삐죽 대는 얼굴을 슬쩍 보여준다. 그러면 서방은 무심한 척 말을 걸어준다. 오늘은 하루 종일 뭐 했는지, 오늘 밤에는 웬일인지 내 코가 멀쩡해 보인다든지, 똘똘이는 그새 무슨 재주가 늘었는지 이것저것 물어오면 그 참을 놓치지 않고 서방의 옆으로 가 콧소리를 내며 비비적비비적해버린다. 그랬던 내가 똘똘이를 낳아놓고는 서방이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알은 체도 않고 짐짓 거만한 듯 똘똘이에게 젖만 물리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됐다. 심지어는 서방이 잠자는 똘똘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 자식, 밤낮 잠만 자나?”       


이러면,      


 “가만둬, 왜 깨 놓고 싶은 감.”     


 하고 서방의 손등을 주먹으로 갈겨버렸다. 오호~ 이 짜릿함이란!

이때부터 서방이 이년, 하면 나도 이놈, 하고 대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붙어만 있으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것처럼 으르렁 대기만 하는 우리 부부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깍다귀들이라고 별명을 붙여놨다. 다른 집에선 서방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마누라 밥 먹었수?”


 “아니요, 당신 오면 같이 먹을랴구~.”


 이렇겠지. 나도 똘똘이 낳기 전에는 이 얼굴로 콧소리 좀 냈었다. 하지만 똘똘이가 나온 후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광경이 됐다. 우리 집은 이렇다.     


 “이년아! 일어나서 밥 차려!”     


 “이놈이 왜 이래, 다릴 꺾어 놀라!”     


 남들이 뭐라 한들 나는 오히려 이런 맛에 산다.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이 없고, 빚은 줄지 않고, 금쪽같은 내 새끼 배불리 먹이지도 못하는 거지 같은 비참한 심정에 서방이랑 이런 투닥거리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겨울철 동치미 한 사발을 마신 듯, 가슴이 알싸해진다. 물론 그러다가 진짜 싸움이 돼버리면 서방의 힘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럴 땐 정말 분해서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고 돼지 코로 연신 콧물을 훌쩍거린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면 서방은 퉁명스럽게,


 “이리 와 자빠져 자-.”     


옆에 와서 자라고 한다.


 “곤두어, 너나 자빠져 자렴-.”     


잡아 죽일 것처럼 할 땐 언제고 옆에서 자래? 서방은 두 번, 세 번, 오라 한다. 네 번째쯤에 마지못해 서방의 옆에 눕는다. 서방도 옆구리를 내어준다. 콧물은 잽싸게 닦고 그렁거리는 눈으로 한 번 흘겨본다. 한 번 제대로 싸우고 나면 뒤통수도 보기 싫은데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한 이불을 덮고 있다. 이런 것이 미운 정이려나, 부부의 정이려나.

 어느 날인가 잠자리에서 내가 물었다.     


“내 얼굴이 그래두 그렇게 숭업진 않지?”       


이러면서 정말 숭업진 않은 얼굴인 척 좀 보라며 얼굴을 들이대 본다. 그러면 서방은 피식 웃으며,     


 “이년아, 그게 얼굴이야?”     


 “얼굴 아니면 가주 다닐까?”     


 “내니깐 이년아! 데리구 살지, 누가 건드리니 그 낯짝을?”     


 “뭐, 네 얼굴은 얼굴인 줄 아니? 불밤송이 같은 거, 참 내니깐 데리구 살지-”     


내 서방은 똘똘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조금은 내게 정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세상 어떤 남자가 못생긴 마누라의 이런 대거리를 참아낼까.       


 “그래, 내, 너 이뻐할 게 자식이나 대구 내놔라.”     


 “먹이지도 못할 걸 자꾸 나 뭘 하게, 굶겨 죽일랴구?”     


 “아, 이년아! 꿔다 먹이진 못하니?”     


나도 서방 닮은, 똘똘이 같은 둘째, 셋, 넷, 다섯도 낳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가난했다.     




 한 겨울인 요즘 우리 집은 서방이 나무 장사를 해서 목에 풀칠이나 겨우 하고 있다. 나무를 팔아 만든 돈으로 서방이 좁쌀, 콩, 미역 등을 사들고 들어온다. 그걸로 죽을 끓이면 며칠 동안은 먹겠지만 우리는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못 먹어도 밥, 곧 죽어도 밥이다. 밥을 지으면 똘똘이는 네 살이니까 한 보시기, 서방은 돈 벌어왔으니까 한 사발에 반 사발 더, 그리고 나는 두 사발을 먹었다. 두 사발을 다 먹고도 서방의 밥에서 한 숟가락을 날름 옮겨와 더 먹었다. 밥을 먹는 것이 정말 좋다. 배부른 것이 좋다. 정말 끼니 걱정 않고 배 터지게 먹고 싶다.     

 겨울 어느 날,     


 “이깐 농사를 지어 뭘 해? 우리 들병이로 나가자.”     


이밥에 고기에 옷도 마음대로 입고, 호강 아닌 호강이나 해보자 하는 생각 끝에 던진 내 말에 대답 없이 골똘히 생각하는 서방의 모양을 보니 - 뭔지 알겠다.     


 “들병이가 얼굴만 이뻐서 되는 게 아니라던데 내가 얼굴은 박색이라도 수단이 있으면-.”     


 “그래 너는 그거 할 수단 있겠니?”     


 “그럼 하면 하지 못할 게 뭐야?”     


 못생긴 얼굴로 들병이를 나가겠다는 내 결심을 서방에게 재차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서방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 밤 시간에 소리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얼굴이 밥값을 못하면 목청이라도 좋았어야지. 밤 새 배우고 배워도 질그릇 물러앉는 소리만 난다. 하품이 나고 눈이 저절로 감겼지만 서방이 먼저 자자고 하기 전까지는 버텨야 했다. 내가 하자고 했는데. 내 실력은 늘지 않고 시범 보여주는 서방의 실력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다. 서방이 그것에 울화가 치밀었는지,     


 “이년아, 정신을 좀 채려, 나만 밤낮 하래니?”     


 “이놈이, 팔때길 꺾어 놀라.”     


 “이거 잘 배면 너 잘되지 이년아! 날 주는 게냐, 큰 체게?”        


하며 손가락으로 내 이마 빼길 꾹 눌러 미는 바람에 뒤로 넘어가버렸다. 여느 때 같으면 으르렁하고 덤볐겠지만 다시 일어나 고쳐 앉았다. 배우고 말겠다. 잘 나가는 들병이가 돼서 신랑도 나무 팔이 않고 우리 똘똘이 배부르게 먹이고 그리 살고 말겠어!     

 서방이 열심히 가르쳐주니 나도 밤낮없이 틈나는 대로 연습했다. 빨래할 때는 빨랫방망이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불렀고, 바느질을 하면서도 노래를 연습했다. 가뜩이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데 노래까지 연습하니 꼬르륵 꼬르르륵 꼬륵 꼬르륵 배 속에서 나오는 소리가 명창이다.

 어느 정도 노래도 부르고 흥타령도 하게 되니 신식 창가를 배우고 싶어 졌다. 서방에게 신식 창가를 가르쳐달라고 하자 땅이나 파먹던 놈이 어찌 아냐며 모른단다. 들병이는 구식 소리도 잘해야 하겠지만 시체 창가를 알아야 불러먹는다던데...

 빨래터에서 다른 여편네들이 수다를 떠는데 그 사이 주워들은 얘기를 따라 산 뒤에 있는 야학엘 몰래 가보았다. 참으로 농군 아이들에게 국문을 가르치고 있었다. 문 밖에서 슬그머니 귀를 쫑긋 세워 듣자니 재미지다. 신식 창가도 가르치길래 몰래 따라 부르며 배웠다. 서방이 어디서 창가를 배웠냐면서 내 귀에 다 들리게 그래도 실력은 조금 늘었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실력이 늘어가는 맛에 추운 줄도 모르고 매일 찾아갔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곧 제대로 된 들병이를 나갈 수 있겠어. 우리 식구들, 등 따숩고 배부를 날이 멀지 않다구.

에휴- 내 얼굴이 조금만 얌전히 나왔더면 이 판에 돈 한몫 크게 잡는 건데...

근데 얼굴이 조금 나아진 거 같기도 하고...

뭐, 들병이는 그렇게까지 이쁘지 않아도 되니까. 실력만 있으면 들병이로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요전에 동네에 들어온 들병이가 그러는데 들병이는 담배도 멋있게 피워야 하고 술도 마실 줄 알아야 하고  사람도 주무를 줄 알고 그래야 한단다. 그래서 서방 담배를 몰래 훔쳐서 부엌에 앉아 피우는데 그것이 아주 맵고 고약해서 기침을 해대고 코를 풀고 난리였다. 그 바람에 서방에게 들켜서 된통 혼쭐이 났다. 서방을 피해 도망쳐 나와 가래를 칵 퉤 뱉었다.


 이놈아, 이게 다 들병이로 성공하려고 이러는 거잖아. 지긋지긋한 빚 갚고 우리 똘똘이 맘껏 먹이려는 거잖아.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




 어디서 듣고 왔는지 요 아래 사는 뭉태놈이 와서는 들병이는 술 파는 경험도 해봐야 한다며 술집으로 데리고 갔다. 노래 배우는 것도 늦고, 담배 피우는 요령도 없는데 술 마시는 것까지도 재주가 없었다. 자주 먹으면 금방 잘 마실 수 있다며 서방이 일 나간 사이에 뭉태놈과 몇 번을 어울렸다. 몇 번을 어울리니 술이 쓰기만 하지는 않았다. 아직 들병이로 나서지도 않았는데도 뭉태놈이 제 발로 찾아올 정도가 되었다. 점점 완벽한 들병이가 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서방이 술과 담배는 싫어하는 눈치다. 담배 피우다 걸렸을 때도 시퍼런 눈으로 손을 꺾어놓으려 했고 술을 처음 마시고 온 날도 같잖은 짓 한다면서 주먹을 흔들어 댔으니.     


 며칠 지나지 않아서 뭉태놈이 또 기웃거리며 한잔 하러 가자 권했다. 서방이 일에서 돌아오기 전에 잠깐만 마시고 오자 싶어 뭉태놈과 술집에 갔다. 오늘 연습을 마지막으로 하고 내일부터는 들병이로 나서 볼 테다. 서방이 좋다, 잘한다, 우리 곱단이가 최고다 하는 말을 하겠지. 제일 처음으로 쌀밥과 굴비를 맘껏 먹어야지. 젓가락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흥이 오르자 술이 술술 넘어갔다. 아니 술이 나를 넘기는 것인지 자꾸 뒤로 자빠지고 혀가 꼬였다. 마치 잘난 들병이가 된 거 같았다. 깔깔깔깔 신이 난다. 또 한 잔을 건배하자며 높이 든 순간 갑자기 찬바람이 훅 들어오고 곧이어 뭉태놈이 방바닥에 메다 꽂혔다. 그리고 술상은 날아가 벽에 가 부서졌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확인할 새도 없이 누군가 내 뒷 머리채를 틀어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바깥으로 나와 내던져져 눈 속에 쳐 박혔다. 차가웠다. 그리고 곧 등줄기가 욱신욱신 아파왔다. 반격을 해야 하는데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자꾸만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만 한다.

 

뭐지, 순사 놈이 잡으러 왔나? 빚쟁이가 잡으러 왔나?


 그렇게 한동안 정신이 바로 서지 않고 추위와 두려움에 오들거리고 있는데 몸이 휙 들어 올려졌다. 어딘가에 걸쳐진 채 몸이 들썩들썩거린다. 코끝에선 비릿한 냄새가 나고 온몸은 욱신거리는데 가슴 배때기는 따뜻했다.    

 

“너 이년, 굶어 뒤지더래도 이제 집에 처 박혀 있어. 한 번만 더 똘똘이 혼자 두고 나 댕기면 다리몽댕이를 분질러 버릴 테니!”     


 따뜻한 아랫목에서 서방이 한 잔 하고 나도 한 잔 받는다. 서방이 노래를 앞서 부르고 나는 뒤따라 부른다. 배가 불룩한 똘똘이가 옆에서 육전을 연신 집어 먹고 있다. 술도 달고 노래도 달다.


 엄마~ 엄마~~ 엄마를 부르는 창가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 티격태격대는 두 사람에게서 어설프고 풋풋하지만 속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곱단이]는 김유정의 단편소설 <안해>를 읽고 남편의 1인칭 시점에서 아내의 1인칭 시점으로 각색한 것이다. 원작의 대사는 그대로 표현하고 서술 표현도 그 시대적 표현으로 하였다. 시점만 남편의 시점에서 아내의 시점으로 각색하였고 아내의 마음은 덧 해석하여 표현했다.

 재창작하면서 가장 드러내고 싶은 것은 아내의 자존감이었다.

암울한 시대를 사는, 가난하고 외모 콤플렉스까지 있는 아내가 ‘나도 뭔가를 배울 수 있구나, 나도 뭔가를 배우고 익히면 실력이 느는구나.’하면서 느끼는 자존감, 들병이가 되려는 꿈을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을 표현하였다. 들병이를 나가기 위해 노래와 담배, 술과 창가를 배우면서 느끼게 되는 묘한 성취감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제목에 있다. 원작에서는 등장인물의 이름은 한 번도 불리지 않는다. 못생긴 얼굴을 가진 여자 주인공의 이름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고자 소설의 제목을 <곱단이>로 하였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 스스로 깨달아가는 존재감과 자존감을 응원하기 위해 이름을 붙여주었다. 곱단이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편에게 듣고 싶은 것은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좋다, 잘한다, 우리 곱단이 최고다"  


기회가 되면 김유정의 <안해>를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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