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문해력과 공부의 상관관계
앞에 가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앞차를 들이박았다. 보기 좋게 교통사고가 났다. 앞차 운전자가 목을 부여잡고 차에서 나온다. 뒤에 있던 운전자도 문을 열고 나와서 차를 살핀다. 그리고는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며 싸움이 시작된다. 과연 이 사고는 누구의 잘못일까?
우리는 공부에서 중요한 것이 문해력이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공부 감정도 공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공부 감정 중에서도 ‘자존감’은 존재감이 대단하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공부 자존감과 문해력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정답부터 공개하자면, 둘 다 공부에 영향을 주는 요소이자 서로에게도 영향을 주는 요소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차근히 알아보겠다.
공부에서 사실 가장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공부 자존감’이다. 어린 시절 형성된 공부 정서가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긍정적인 공부 정서와 자존감은 문해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책을 읽을 때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모르는 내용이 나와도 도전적으로 읽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은 책을 읽다가 모르는 게 나오면 쉽게 포기한다. 그 이유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큰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사실은 글을 통해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것과 같다. 새롭게 정복해야 할 어휘 그리고 문장이 책 속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부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스스로 모르는 걸 찾아보거나 주변에 적극적으로 물어보거나 하면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다면 모르는 내용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두려워서 피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모르면 모른 채로 그냥 넘기고,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 왜냐면 자신이 없어서 지금 위기 상황을 어떻게든 넘기는 게 최선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으며 새로운 내용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독서를 강조하는 많은 학자와 작가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책 읽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어린아이를 부모가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의 정서 발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읽는 행위가 사실은 글과 그림을 해석한다기보다는 부모와 피부를 맞대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서 교류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아이의 스킨십 과정에서는 옥시토신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뇌에서 나오기 때문에 정서적 안정을 느끼고, 사랑받는 느낌을 강하게 가지게 되는 것이다. 즉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화롭고 안정적인 정서가 발달한다는 말이다. 또한 이런 행위 속에서 부모와 아이의 신뢰가 쌓여 믿음이 더욱 강해진다. 이 믿음이 결국 아이의 ‘자존감’과 직결되어 아이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있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초등 공부는 문해력이 전부다》에서도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 곧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 강조한다. 그리고 이 공부 정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대학 입시 스트레스로 무너지는 수험생들도 사실은 어린 시절에 충분히 공부 정서가 안정화되지 않았을 때 그런 모습을 보인다. 정확한 시기를 명명하기는 어렵지만, 공부 정서에 대한 부분은 어린 시절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속담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도 그래서 있는 게 아닐까?
교통사고에서도 거의 항상 쌍방 과실이 있는 것처럼, 공부 자존감과 문해력의 영향 관계에서도 쌍방으로 문제점이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해력이 낮은 아이들의 경우 공부 자존감이 낮고, 정서적으로도 불안감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교우 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부정적인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심각한 경우에는 정체성 혼란이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EBS 다큐 <당신의 문해력>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꼬집었다. 문해력이 낮으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휘로 인해 수업에 집중 못 하고, 결국엔 공부도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문해력이 낮으니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되어 박탈감도 커진다. 심지어는 부족한 문해력으로 인해 친구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소통 문제가 생겨서 점점 더 위축된다. 비단 친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부모, 선생님,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 속에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데 미숙하니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하게 되어 관계가 더욱 악화가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렇듯 문해력이 낮으면 단순히 인지 능력과 지적인 능력에만 문제점이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비인지적 능력, 즉 정서적인 문제와 정체성 문제까지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엔 이것은 자존감 상실, 우울증과도 연결될 수 있어서 심각한 문제에 빠질 수 있다. 문해력으로 인해 공부 자존감뿐만 아니라 비인지적인 모든 능력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만일에 이런 상태에서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가게 된다면 업무를 수행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분명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보통 공부는 입시와 연결 짓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실 공부하며 쌓는 능력들은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업무를 하더라도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익혀서 실제에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때 공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업무 자존감이 높아서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공부 자존감은 컴퓨터에서 전원 공급 장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문해력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니 CPU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CPU가 좋다고 하더라도 전원이 공급되지 않으면 CPU는 작동할 수 없는 것처럼, 공부 자존감이 없는 아이라면 문해력이 발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원 장치가 출력이 충분하더라도 CPU가 성능이 좋지 않으면 그 컴퓨터는 처리 속도가 떨어져서 사람들이 그 전원이 켤 일이 없을 것이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알 수 없는 것처럼, 공부 자존감이 먼저인지 문해력이 먼저인지 따질 수는 없다. 하지만, 두 요소가 공부와 성적에 있어서 분명히 중요한 요소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공부 자존감이 문해력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문해력이 공부 자존감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쌍방이라는 말이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공부 자존감을 키워주고 아이를 믿어주는 것이 왜 문해력에 도움이 되는지 공유해볼까 한다. 예전에 공부와 담을 쌓은 고등학생을 과외를 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받는 성적도 엉망이었으나 과외를 시작하고, 나는 그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잘 나올 거라는 믿음을 주었다. 잘 모르면 다그치기보다는 아직 배우지 않아서 모르는 거니까 익혀보자고 타이르고, 성실하게 수업이 진행되도록 좋은 관계를 쌓으며 계속 지냈다.
3개월 정도 같이 공부한 후 첫 시험을 봤는데, 평균 50점 대가 나오던 아이가 일부 과목에서는 90점대를 받았다. 물론 시험 점수가 모든 걸 다 말해줄 수는 없지만,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유효했다. 이미 그동안 15년 넘게 살아오면서 쌓은 문해력을 믿음과 신뢰라는 울타리 안에서 재정비하면 크게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사례라 믿는다. 결국 문해력을 향상을 위해서는 독서도 물론 중요하지만, 공부 감정과 자존감도 꽤 중요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