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도 이제 1급 정교사랍니다
제가 정교사로 임용된 후에 저를 아끼는 선배 교사로부터 조언을 받았어요. 그 조언은 “3년간 눈 닫고, 귀 닫고, 입 닫고 있어야 한다.”였어요. 이유인즉 본인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선배들과 갈등을 겪었다고 해요. 신규교사로서는 이 자세를 갖추는 게 좋다고 했죠. 그런데 저는 이미 정교사 임용되었을 때 5년 차 교사였어요.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니 선배의 말을 가슴에 품고 따랐어요.
수업을 더 많이 배정받아도, 업무를 더 하게 되어도 후배니까 참고 버텨내야지 생각했어요. 선배들도 과거에 다 그렇게 했다니 특별히 할 말이 없었어요. 3년만 참으면 좋은 날이 올 테니 기다리자 생각했어요. 하지만 12년 차인 지금도 저는 저 조언을 따르고 있어요. 이미 저는 웬만하면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각인되어 버려서 바꿀 수가 없더라고요.
게다가 저는 기간제 교사 생활을 오래 경험해서 눈치를 많이 보게 되었어요. 개인적인 성향도 누군가와 다투는 걸 지극히 싫어해서 평화주의를 선호하고요. 그냥 내가 조금 더 하고 말지 생각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항상 할 일을 하고 있답니다.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억울하고 힘드니까 차라리 베풀며 살면 복으로 돌아오겠지 생각하는 거죠.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저는 어떻게 보면 교직에서는 낀 세대가 아닌가 싶어요. 선배들의 말은 잘 듣고, 후배들한테는 선배들과는 똑같이 할 수 없는 중간에서 치이고 있기 때문이죠. 저랑 3살만 차이나는 선생님들만 봐도 소신 있게 발언하는 모습을 보여서 놀랐어요. 그런데 90년대 생 선생님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사실 어떻게 보면 90년대 생부터는 저한테는 제자뻘이에요. 그러니 세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개인적 성향 차에 따라서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90년대 생들만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갖고 있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꼰대 같지만, 제가 우리 학교에 왔을 때는 매일 8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때 학교 문화 탓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개인보다 학교에서의 업무가 우선시되는 분위기였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학교도 분위기가 변했고, 선생님들도 가족이 생기고 해서 그런지 몰라도 퇴근 시간에 민감해진 것 같아요.
하지만 MZ세대에 해당하는 90년대 생 선생님들은 워라밸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저는 중간에 낀 세대로서 충분히 그 사고방식을 존중한답니다. 하지만 부장님이 갑작스럽게 업무로 남아야 한다고 하거나 주말에도 손길이 필요하다고 하면 저는 대체로 가족의 동의를 구한 후에 참여하려고 노력해요. 그동안 그렇게 해왔기에 자연스럽다고 생각도 하고요. 물론 저도 저녁이나 주말에 가족과 편하게 집에서 쉬고 싶지요. 머리로 생각은 하지만 입 밖으로 생각을 내비치지 못하네요.
반면에 우리 90년대 생 선생님들은 자신의 일정을 1순위로 생각하더라고요. 물론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일정이 있어서 어렵다고 말하거나 난색을 표현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소신 있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모습이 멋져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느껴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좋은 점이 많다고 느껴요. 한 번은 저보다 어린 선생님이 팀이 있는데도 업무를 혼자서 준비하다가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교과 회의 시간이었는데, 전체 선생님 앞에서 너무 힘들다고 대놓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는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나머지 선생님들은 벙쩌서 말을 잇지 못했죠. 같은 업무를 담당하던 선생님 두 명이 급하게 따라 나가더라고요.
울며 나갔던 선생님은 들어와서 놀라게 만들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결국은 나머지 선생님들이 열심히 그 선생님을 도와서 해피엔딩으로 끝났어요. 그때 저는 많이 후회했어요. 왜 나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을 못 할까. 어쩌다가 이런 이미지가 되었고,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제가 MZ 세대니 90년대 생이니 표현했지만, 사실은 개인 성향 차이가 더 크다고 생각해요. 분명한 건 학교생활을 3년 정도 하고, 1급 정교사 자격도 따고 했으면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제는 신규교사에서 벗어나서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학교마다 문화가 달라서 분위기는 봐야겠지만,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만나 본 선생님 중에는 저랑 나이가 비슷한데도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한 분도 있었고요. 저보다 나이가 적은데도 요즘 세대와 다르게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집단을 먼저 생각하는 분도 봤어요. 결론은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어떤 교사로 학교생활을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는 의미예요.
저는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는 선생님들께서는 조금은 마음을 넓게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너의 것과 나의 것이 분명한 것도 좋지만, 같은 부서에 있으면 필요에 따라 서로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의 사정도 중요하지만, 내가 덜 하면 누군가는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저도 초임교사 때는 제 앞가림하는 게 어렵고 힘들어서 다른 사람을 돌볼 여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고, 야근할 때 제 일을 했었죠.
이렇게까지 하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래도 내가 여유가 있다면, 그때는 주변을 돌아보고 도울 수 있는 일은 함께하면 좋겠다는 마음이랍니다. 사소하지만 쓰레기봉투 버리는 일, 교무실 청소하는 일, 전화를 당겨 받는 일, 무거운 짐을 들고 가면 나눠서 들어주는 일 등 그런 거라도 같이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며 그건 당연한 게 아닌가 할 수도 있어요.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충분히 학교생활 잘하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쭉 그렇게 해주시길 바라며, 저도 초심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