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좌충우돌 초임교사
군대에서는 일명 풀린 군번, 꼬인 군번이라는 말이 있어요. 풀린 군번은 말 그대로 남은 군 생활이 풀렸다는 말이고, 꼬인 군번은 막막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에요. 왜냐고요? 풀린 군번은 선임들이 곧 전역하고 자기가 선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꼬인 군번은 바로 위에 선임들이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데 인원도 많아서 전역할 때까지 거의 막내로 지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왜 갑자기 하냐고요? 학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공립학교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때가 되면 학교도 옮기고 지역도 옮겨야 하기에 해당 사항이 없어요. 하지만 사립학교라면 말이 달라져요. 평생 같은 학교에서 같은 사람들과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족’이라는 말을 많이 써요.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면, 정말 ‘가족’같이 지낼 수 있지요. 하지만 반대라면 지옥 같은 생활이 펼쳐질지도 모르죠.
어찌 되었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가 꼬인 군번에 해당한다는 거예요. 프롤로그에서 말했지만, 선배 교사 한 명이 다른 학교로 떠나면서 자리가 나서 제가 시험 보고 임용될 수 있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막내를 얼마나 해야 할지보다는 단지 정교사가 되는 게 가장 큰 목표였기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어요. 막상 정교사가 되고, 막내라는 호칭을 계속 듣다 보니 현실 직시가 되었어요.
결정적으로 수업 시수를 배정할 때 남은 30년도 이렇게 가겠구나 싶었어요. 저는 거의 항상 수업이 걸치든, 학년이 걸치든 쉽지 않은 수업을 배정받았어요. 참고로 제 교과에는 16명의 선생님이 있어요. 최고참은 저보다 8살 많아요. 꽤 젊은 집단이죠?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저는 55세가 될 때까지는 최고참이 될 수 없다는 의미예요.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특성상 제 교과에 교사도 많고, 학과별로 과목이 달라서 과목 수도 엄청 많아요. 그래서 부장 교사나 선배 교사가 일주일 2차시 수업 준비하는 과목을 맡고 나면 나머지 남은 쪼개진 수업을 나머지 교사들이 맡아요. 어떻게든 공평하게 나눠보려고 해도 그게 물리적으로 안 되는 상황이에요. 누군가는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발휘하는 상황이 되죠. 대부분 막내가 해야 하지만요.
극단적인 예로 막내인 저는 올해도 비담임이라 2학기 때 3과목이 걸치고, 두 개 학년이 걸친 수업을 맡았어요. 일주일에 18 시수(보통 하루 4시간, 수요일만 2시간)이고, 5차시 수업을 준비해야 해요. 게다가 부서에서는 기획이라 정말 숨 쉴 틈 없이 수업 준비하고, 일하고, 수업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요. 누군가 제 모습을 지켜본다면 거의 기계처럼 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만 발견할 거예요.
정말 다행히도 지금은 여러 방면에서 능력치가 올라가서 야근하지 않아도 돼요. 물론 체력적으로는 너무 힘들지만요. 하지만 신규교사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끔찍해요. 매일 밤 10시~11시까지 남아서 수업 준비와 업무 그리고 한 회당 두 과목을 합치니 45문제 정도 출제해야 해서 매일 틈틈이 문제를 냈어요. 그중 한 과목은 단독 과목이라 부담이 매우 컸답니다.
그해에 한 번은 거의 다 낸 단독 과목 문제 파일을 저장하다가 잘못 눌러서 문제를 모두 날려버린 적이 있어요. 원안지 제출 이틀 전에 일어난 사고였죠. 한 달 넘게 낸 문제를 다시 복기해서 내려니 죽을 맛이었어요. 새벽까지 남아 있으니 숙직하시는 경비원분이 오셔서 무슨 일이냐고 했어요.
저는 시험 문제가 날아가서 새벽까지 일하고 갈 것 같다고 말했죠. 그때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할 때라 다행히 집에 걸어갈 수 있었기에 새벽 3시쯤에 퇴근했던 기억이 나요. 100% 똑같이 문제를 살려내지 못했지만, 거의 90% 이상은 그대로 기억에 의존해서 복기시켰던 악몽이 떠올라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답니다.
그해에 한 과목 단독 과목을 맡고, 다른 학년 과목을 추가로 맡아서 정말 바쁜 한 해를 보냈어요. 하지만 다음 해에도 제 수업 배정에는 변화가 없더라고요. 웃긴 건 저도 신규고 다른 선생님도 같은 신규인데 상황에 따라 대우가 달라질 수 있어요. 저는 기존 경력이 있으니 여러 개 맡아도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반면 완전 교직 생활이 처음이었던 그 선생님한테는 정말 쉬운 수업을 맡겼어요. 일주일에 2차시만 수업 준비하면 되는 한 과목을 맡겼죠. 이런 일로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걸 느끼게 되더라고요.
물론 다음 해에는 그 선생님도 힘든 수업을 배정받았어요. 시수도 많고 차시도 많은 수업으로요. 그런데 저는 작년에도 학년이 걸친 두 과목이었는데, 다음 해에도 또 학년이 걸친 두 과목을 맡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현실을 알게 되었죠. 남은 30년도 이렇게 가겠구나 싶었어요. 왜냐면 저는 우리 교과에 막내로 들어온 정교사였으니까요.
학교마다 다르지만, 담임교사보다 비담임 교사한테 수업을 더 많이 준다고 해요.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모두 그랬거든요. 그래서 제가 드디어 담임교사가 되었을 때 조금이나마 기대했어요. 이건 웬걸. 저랑 같은 교과 선생님이 3명이나 같은 학년에 배정되면서 저는 또 후배라는 이유로 수업 선택에서 밀렸어요. 그래도 나름 배려해주시긴 했는데 나중에 성과급 받을 때 억울했어요.
제가 수업 시수는 조금 적었지만, 일주일 4차시 준비에 두 과목이 걸쳤던 저는 B를 받았어요. 나머지 두 분은 2차시 수업에 한 과목씩 맡았는데도 A가 나왔더라고요. 차라리 저도 한 과목에 2차시 수업 준비하면서 수업 시수가 더 많기를 바랐어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과적으로 보상도 없으니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어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사립학교를 생각하고 있거나 이미 임용되어 근무하시는 선생님이 걱정할 것 같아 긍정적인 측면도 말씀드릴까 해요. 일단 모든 학교가 군대 문화가 있지는 않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혹은 과목별로 다른 분위기가 있을 수도 있고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어떤 부류의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만일 우리가 선배 교사가 되었을 때는 그동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고쳐나갔으면 좋겠어요. 아쉽게도 저는 어찌해보려고 해도 아직 한참 남아서 이 문화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듯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고, 적응해야죠. 그게 생존 방식이니까요. 저는 그동안 고군분투하며 잘 버텨왔어요. 덕분에 능력치도 많이 올라가서 좋은 점도 있었어요.
이른 시기부터 많은 문항 수를 출제하면서 출제 실력이 올라갔어요. 그래서 출제에 관심이 생겼고, 공식적인 자리에 지원해서 전국연합평가나 공무원 시험 등 다양한 출제 및 검토위원으로 활동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덕분에 시험 문제 오류도 거의 최소화해서 큰일(재시험 등)이 일어난 적도 없었어요. 물론 교사라서 매번 출제 이후에 가슴 졸이며 살고는 있지만, 그동안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믿어요. 출제 관련 이야기는 2장 <성장일기>에서 나중에 더 자세히 해드릴게요.
30년 동안 막내라서 힘든 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맞아요. 수업 배려 저도 받고 싶어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현실을 받아들여야죠. 대신 많이 힘들지만 그만큼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점도 있어요. 제가 만일 그동안 적당히 수업하고, 적당히 업무 하면서 살아왔다면, 지금의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힘들었고, 성장했고, 발전했기에 이렇게 책을 쓸 기회를 얻었다고 믿어요.
교사를 꿈꾸는 예비 선생님들! 혹은 이미 신규교사가 되신 선생님들!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군대에서 이런 말이 있어요. 가장 힘든 보직이 뭘까? 정답은 바로 ‘내가 맡은 역할’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내가 맡은 일을 정확히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맡은 일이 가장 힘든 거예요. 누구나 그래요. 어차피 다 힘든 상황이니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드는 시간이라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분명 나은 미래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