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행정직원인지 교사인지 모르겠네

1. 좌충우돌 초임교사

by 신영환

제 첫 학교에서의 업무는 바로 방송과 기자재 관리 담당이었어요. 면접 볼 때 교감 선생님께서 방송 업무를 할 수 있겠냐고 물으셔서 자신 있게 대답했죠. “군대에서도 방송 장비도 다루고 해서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방송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탐구 정신이 있었던지라 자신 있게 대답했답니다. 덕분에 합격하고 출근할 수 있었지만, 얼마나 힘든 일이 돌아올지 몰랐었지요.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방송 업무는 학교 업무 중에서 힘든 업무라고 알려진 손꼽히는 업무 중 하나였어요. 그래도 아무런 경험이 없는 백지상태의 저였기에 학교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감사한 하루를 매일 보냈어요. 그런데 수업 20시간에 수없이 많은 행사 진행을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정체성 혼란이 오기 시작했어요.

수업하러 다녀온 나머지 시간에는 거의 모두 방송 업무에 매달렸기 때문이죠. 심지어 학생들 축제가 있어서 야간까지 연습하느라 야근도 일주일 넘게 했답니다. 첫 출근 후 일주일은 그렇게 혹독하게 보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도 학교급(학년당 16학급)이 크다 보니 행사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답니다.


심지어 수능 시험장으로 운영되는 학교라서 보통은 초임교사는 3년 차까지는 수능 업무에서 배제가 되곤 하는데, 저는 바로 방송 업무로 투입되었답니다. 교사는 학교에서 수업하고, 아이들과 소통하며 진로 방향성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줄로만 알았던 저는 그렇게 행정업무와 행사가 많은 현실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다음 해에 다른 학교에 지원할 때는 방송 업무 경험을 일부러 적지 않았어요. 선배들한테 이야기를 들었어요. 기존에 하던 업무를 보고, 업무를 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어요. 그래서 교육정보부에서 기자재 관리 업무를 했다고만 이력서에 적었답니다. 다행히도 다음 학교에 합격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역시나 비담임으로 배정되었어요.


학교마다 다르지만, 공립학교는 초임교사나 기간제 교사의 경우에도 바로 담임교사로 배치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사립학교는 학교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 전임 온 교사에게는 주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비담임 교사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 학교에서 2~3년 정도 근무하며 학교 순리를 잘 이해하는 교사에게만 담임교사로 배정하는 걸 주로 봤어요.


그래서 2, 3년 차에는 한 사립학교에서 근무했는데, 모두 환경과 봉사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았답니다. 이 업무도 초임교사이자 젊은 교사에게 많이 맡기는 업무라고 해요. 분리수거장에서 매주 두 번씩 쓰레기 처리하는 일을 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방송 업무가 더 힘들었기에 나름 만족하며 근무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교사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관리하는 학급은 없었다는 점이에요. 비담임 교사로서는 아이들과 수업 시간 외에는 소통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죠.


소속감과 유대감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책임져야 할 학급이 없으니 내 아이들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항상 수업 외에는 행정업무를 하거나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해야 하니 더욱 교사라는 느낌보다는 학교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부품으로 쓰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년 차에 현재 근무하는 외고에 계약직으로 오게 될 때는 혹시라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해서 그동안의 이력을 모두 적었어요. 당연히 방송 업무도 적었죠. 다행히 합격했지요. 그런데 제가 부여받은 업무는 기가 막히게도 ‘환경’과 ‘방송’이었어요. 선배들이 말했던 대도 기존에 하던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지요. 3D의 끝판왕 업무를 두 개나 받은 거였지요.


특목고라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행사가 많았어요. 게다가 여기는 입학 업무도 있어서 주말에 입학 설명회 같은 행사도 자주 있었어요. 방송 업무의 거의 모든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환경 업무도 말할 것도 없었죠. 항상 뻘뻘 땀을 흘리며 다녀서 그런지 몸무게가 많이 빠져서 날씬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아이들과 소통하며 지낼 수 있어서 기쁘게 일했어요.


하지만 그다음 해에 정교사로 임용되고 또 비담임으로 배정받으면서는 정말 내가 교사인가 행정업무를 하는 직원인가 착각이 들게 되었답니다. 그때 배정받은 업무는 다양했는데 모두 문서와 서류를 처리하는 일들이었어요. 그중 평가 업무로 답안지를 기계에 넣고 채점하는 일도 했는데, 전자파가 넘치는 기계실에 홀로 앉아서 답안지를 처리할 때 무아지경에 빠졌어요.


하루는 문득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분명히 아이들을 맡아서 행복하게 학급을 운영하고 싶어서 교사가 되었는데, 이건 무슨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려고 내가 교사가 된 건 아닌데...’ 자꾸만 머릿속에서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정교사가 되었는데도 저는 왜 담임교사를 하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제가 근무하는 곳은 사립학교이고, 특목고라서 아이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학교의 시스템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만 담임교사를 시키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학교에서 다음 해에도 다른 부서에서 또 비담임 교사를 하고 3년 만에 간신히 담임교사가 될 수 있었어요. 결국에 저의 첫 담임교사 경험은 교사 7년 차에 처음 이뤄졌답니다.


아주 만일 7년 차가 되는 해에도 담임교사가 되지 못했다면, 저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네요.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첫 담임교사를 저는 고3 담임을 맡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냐고요? 입시의 압박 없이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고1, 고2 생활과는 달리 고3은 입시와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에요.


고3 담임이라서 알콩달콩 아이들과 재미있는 활동을 하며 학급을 운영하지 못했어요. 매일 좀비처럼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는 수험생과 입시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동반자로 살아야 했죠. 이상과 현실은 그렇게도 다를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래도 그동안 담임교사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에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혹시라도 교사가 되는 이유가 아이들과 소통, 혹은 멋진 수업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기를 바랍니다. 생각보다 학교에는 그 외에도 다양한 업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누군가는 힘들다고 느끼는 업무를 내가 대신해야 할 수 있거든요.


그래도 행정업무만 하지 않고, 여전히 우리는 수업하는 교사이고, 아이들과 소통하는 교사라서 행복할 수 있어요. 그 두 가지 이유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하는 행정업무도 모두 우리 아이들을 위해 다 필요한 일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의미 있고 보람될 거예요!


keyword
이전 02화프롤로그: 4전 5기 나도 드디어 교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