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신규교사 생존일기
누군가는 방학이 있어서 좋다고, 누군가는 철밥통 직업이라 좋아서 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현실은 철밥통도 아니지만...) 하지만 저는 조금 많이 생각이 달랐어요. ‘교사’라는 길을 택한 건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삶과 죽음의 인생의 기로에서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이죠.
공부를 썩 잘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10대에는 제겐 공부가 전부였어요. 대학입시를 두 번이나 실패하니 왜 살아야 하나 고민 끝에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죽을 용기조차 없었던 패배자였습니다. 다행히도 며칠 후에 정신 차리고 어떻게든 다시 살아가자고 결심했습니다.
사실 그때 처음으로 내 남은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었던 것만 같아요. 그동안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에 진학하고, 전문직 직업을 갖는 게 꿈이었거든요. 부끄럽지만 그땐 그게 성공이라 믿었어요. 대신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으며 나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별거 없더라고요.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를 위한 삶을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나처럼 10대 때 공부와 입시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어요. 그랬더니 바로 답이 나오더라고요. ‘교사가 되면 학교에서 나처럼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겠구나!’
야속하게도 두 번째로 봤던 수능 점수는 교육학과가 있는 학교에 진학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어요. 또다시 좌절에 빠질 뻔했으나 열심히 정보를 찾아봤더니 교육학과에 진학하지 않아도 교사가 되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더니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았어요. 물론 정석의 길도, 지름길도 아닌 빙빙 돌아가는 길이었지만요.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학과를 나오거나, 교직 이수를 하거나, 교육대학원을 나와서 ‘정교사 2급 자격’을 받아야만 해요. 그래서 저는 두 번째로 빠른 코스인 교직 이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결국에 관심 있는 영어영문학과를 찾아서 대학에 입학했어요. 하지만 또 난관에 부딪히더군요. 교직 이수를 하기 위해 80명 중 4명에 들어야 한다네요.
더는 물러설 곳이 없기에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꽃다운 20대 청춘 다른 사람들 연애하러 다닐 때 저는 주말에도 도서관에 가서 죽도록 공부했어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더니 정말 열심히 하니까 교직 이수를 할 수 있었고, 교사 자격을 얻게 되었답니다. 갑작스러운 전개이기는 하지만, 좋은 성적 덕분에 해외 교육대학원에도 한 번에 덜컥 붙을 수 있었어요.
물론 대학에 다니면서 임용고사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합격해서 바로 교사가 되면 좋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3학년과 4학년 때는 ROTC를 했고, 졸업 후에는 장교로 바로 군대에 갔기 때문에 핑계지만 임용고사에 몰입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학벌에 대한 자격지심과 실제 내 영어 실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인해 어학연수든 유학이든 도전해보기로 했답니다.
안타깝게도 부모님께서 도와줄 형편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가난은 저를 막을 수는 없었어요. 멋지게 대학원을 졸업해서 영어 실력을 키우고 한국에 돌아와서 영어교사가 되는 꿈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돈이 부족해서 하루에 한 끼는 꼭 라면을 끓였고, 항상 국물에 밥을 말아먹었어요. 그래야만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거든요.
매일 공부하고, 매일 아르바이트하는 지루하고 똑같은 일상이지만 그래도 행복했어요.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니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어요. 끝까지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거라고 하죠? 열심히 버티며 공부했더니 대학원 성적도 좋게 받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상위 등위에 있는 학생들에게만 부여하는 ‘Golden Key’ 자격을 얻었답니다. 해외 어딘가에 취업한다면 도움이 되었겠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쓸 일은 없었네요.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는데 또 인생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막상 한국에 돌아와서 임용고사를 준비하려니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일하지 않고 공부만 하기엔 30살 가까이 된 나이에 부모님께 손 벌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공부보다는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외국에서 너무 가난했던 경험 때문인지 그때 갑자기 돈이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에서 그렇게 이를 악물고 교사가 되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텼는데 현실은 역시 녹록지 않더라고요. 시기적으로도 8월쯤이라 공개 채용이 별로 없었어요. 물론 제 전공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도 한정적이라 어려움이 있었죠. 그래서 수시로 모집하는 유명한 대형 어학원에 토익 강사로 지원했어요. 해외 유학 경험 덕분인지 몰라도 서류 통과되었으니 면접 보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리고 같은 시기 지원했던 학교에서도 서류가 통과했다고 동시에 연락이 와서 고민에 빠졌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느 길을 선택하실 건가요? 행복한 고민이지만, 저에겐 어려운 선택이기도 했어요. 누가 그랬거든요. 대형 어학원에서 잘 되어 돈의 맛을 보면 다른 일로 바꾸기 쉽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그래서 일단은 제가 그동안 10년 동안 꿈꿔온 교사의 길을 선택하기로 했답니다. 그렇게 기간제 교사로 교직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왜 4전 5기냐고요? 아직 정교사로 임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직장에도 계약직과 정규직이 있는 것처럼 교사도 똑같거든요. 그때부터 4년간의 정교사 임용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었답니다. 역시 인생은 만만하지 않아요.
초임교사라 많이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은 누구한테도 뒤처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처음 받았던 월급은 150만 원 남짓했지만, 돈과 상관없이 너무 행복했어요. 10년간 꿈꿔온 일은 내가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교사 임용은 ‘하늘 별 따기’였답니다.
매일 일하고 퇴근하면 녹초가 되어 쓰러질 것 같았어요. 하지만 어떻게든 도서관으로 몸을 끌고 갔죠. 국가 임용고사를 보고 공립학교에 들어가거나, 사립학교 자체 시험에 통과해서 아무튼 정교사가 되어야 했으니까요. 국가 임용고사 시험은 제가 치던 시기에는 방식이 바뀌던 때였는데, 실력의 부족함 때문인지 시험 준비 부족 탓인지 매번 고배를 마셨어요.
신기하게도 사립학교 시험은 객관식 시험 보는 곳은 잘 안 되는데, 영어 논술 시험 유형이 있는 학교에서는 무조건 1차를 통과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외국에서 갈고닦은 영어 에세이 쓰던 실력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몇 학교는 최종 이사장님 면접시험까지도 갔어요. 그런데 최종 결과는 탈락이었어요.
생각해보니 항상 똑같은 질문을 받았던 것 같아요. 명문고를 나왔는데 왜 대학은 그곳을 갔느냐 물었죠. 내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기에 대답을 잘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교사 3년 차가 되던 해에는 마음을 조금 비우기로 했어요. 내가 정교사가 되려고 교사가 된 게 아니라 아이들을 도와주는 교사가 되기로 한 초심을 잘 지키고자 결심했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점심 식사 시간에 아이들과 어휘 스터디도 하고, 야간에는 무료로 수업을 열어서 학력 향상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비록 몸은 좀 힘들었지만, 교사로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그때 1년은 아직도 기억날 정도로 생생해요. 열심히 활동한 덕분인지 교사 표창 심사를 받았어요. 그런데...
제 신분이 기간제 교사인 걸 알고서는 심사 위원들의 표정과 태도가 급변하는 모습을 보고 말았어요. 심사 시작할 때만 해도 분위기가 엄청 좋았었는데도 말이죠. 표창을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씁쓸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죠. 그리고 좀 더 떳떳하게 교사로서 꿈을 펼치려면 신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그렇게 정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다시 먹었는데, 재미있는 상황이 오더라고요. 옮긴 학교는 매일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문화가 있는 학교였어요. 1년 내내 수업 준비와 업무로 거의 매일 야근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당연히 임용고사든 사립학교 시험이든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죠. 하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최선을 다했어요.
역시나 찬 바람이 부는 연말에는 다시 어딘가 학교와 계약해야 하기에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어요. 임용고사는 전혀 준비하지 못해서 지원조차 하지 못했어요. 대신 내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사립학교 위주로 시험을 보러 갔죠. 그렇게 여러 군데 시험을 보고 있는데, 제가 근무하던 학교에서도 한 선생님이 그만두시면서 자리가 나서 공고가 났어요.
비록 업무 강도는 매우 높지만, 여러 이유로 이 학교에 임용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시 하늘의 신은 저를 시험하더군요. 하필이면 3명의 정교사를 뽑는 학교 시험 날짜와 제가 희망하는 학교 시험 일정과 겹친 것이죠. 저는 어디를 택했을까요? 비록 1명밖에 안 뽑지만, 마음이 가는 곳으로 시험을 보러 가기로 했어요.
다행히 1차 필기를 통과했고, 2차 면접도 통과했는데 3차 수업 시연에서 위기가 왔답니다. 수업할 영어 지문 첫 문장을 해석하는데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머리가 복잡했어요. 3명 뽑는 학교로 갈 걸 왜 여기로 선택해서 이런 시련을 겪는지 자책했어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인데도 말이죠.
울며 겨자 먹기로 남은 내용이라도 확인하고자 나머지 문장들을 읽었어요. 그런데 딱 그 한 문장 빼고는 모두 해석이 너무 잘 되는 거예요. 다 읽고 나니 첫 문장에 단어 하나가 오류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단어를 고쳐서 수업 준비를 했고, 10번이고 완벽하게 연습해서 수업 시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출제자들이 일부러 낸 함정이었는데 그걸 잡아낸 사람이 딱 2명뿐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요? 저는 그 수업 시연 덕분에 당당하게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 정교사로 임용되었답니다. 7전 8기까지는 아니지만, 4전 5기라는 도전을 통해 이뤄낸 결과였죠.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됩니다. 결과에 따라 후회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분명한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다고 생각해요. 혹시라도 아직 정교사 임용이 안 되었다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교사가 꿈이라면 그 꿈을 향해 계속 달려가시길 응원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점이 있을 거예요. 우리 인생의 시련은 계속 있다는 것! 그리고 정교사 임용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요. 저도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지 전혀 몰랐답니다. 그럼 지금부터 좌충우돌 신규교사 생존일기를 만나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