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좌충우돌 초임교사
12년 동안 교사로 근무하며 잊지 못할 사건이 몇 가지 있어요. 어쩌면 평생 꽁꽁 숨겨둔 채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를 일도 있고요. 범죄에도 공소시효가 있는 것처럼, 허나 이번 이야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으니 마음 편히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아직도 그때 생생한 기억을 떠올리면 아찔하긴 하지만요.
바야흐로 지금 소속된 학교에서 처음으로 일할 때였어요. 말씀드렸지만, ‘환경’과 ‘방송’을 업무로 맡고 있을 때였죠. 이 사건은 두 업무 중에 ‘환경’에 속합니다. 하지만 교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환경 관련 업무를 하다 보면 선생님들께 요청 전화가 오거나 ‘수리 신청서’를 통해서 학교 시설 수리 및 보완하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다행히 대부분 시설 관리 주무관님께 연락을 드려서 문제를 해결하지만, 그분이 부재중이거나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환경 담당 교사가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하지요. 각 층에 계단 쪽에 비치된 분리수거에 있는 연속 비닐을 교체하기도 하고, 화장실 손 비누를 갈아 끼우고, 방향제도 교체하고 사소하지만 학교 시설이나 환경 조성을 위한 일은 도맡아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따라 유독 사건이 발생하지 않길래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어요. 퇴근 시간이 지나고 부서로 제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폭풍전야라는 말 알고 있죠? 딱 그 표현이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거대한 폭풍이 몰려와 교무실을 초토화시켰으니 말이죠. 너무 뜸 들이니 무슨 일인가 궁금하시죠? 그만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엄청난 일이나 사건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일명 ‘똥 폭탄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제목부터 섬뜩하죠?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습니다. 제보해주신 선생님께서 가라사대, “여자 화장실에 폭탄이 터져서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어요. 4층으로 올라와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폭탄’이란 표현이 말 그대로의 사실은 아니겠지만, 이건 분명 심상치 않는 엄청난 일이 발생한 게 틀림이 없다고 단정했죠.
아무리 제가 환경 담당 교사라 해도 미혼의 젊은 ‘남자’인데 여자 화장실에 가야 한다니 기분이 묘했어요. 물론 아이들이 없는 상황에서는 문 근처에서 물품을 교체하러 들어가거나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그래서 용기가 나지 않아 부서에 계신 선배 선생님께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죠. 다행히 흔쾌히 동행해주셨어요.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 가는 길, 4층까지 계단을 오르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런 걸까?’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드디어 4층에 도착하니 전화 제보해주신 선생님이 발을 동동 구르며 계셨어요. “선생님! 화장실이 난리도 아니에요. 여기저기 똥 폭탄이 터져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하죠?” 그랬습니다. 폭탄의 진실은 바로 ‘똥!!!’ 폭탄이었어요.
흐릿했던 사건의 전말이 이렇게 분명하게 드러나자 다행히 두려움은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막막한 심정은 달랠 수 없더라고요. 그래도 심호흡을 하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어요. (여기부터는 매우 지나친 사실적 묘사가 포함되어 있으니 심약자는 마음의 준비를 해주세요.) 우선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바닥에 흥건하게 한 줄로 늘어선 황토 진흙물이었어요.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니 5칸 중에 딱 중간 3번 칸으로 이어지더라고요. 발에 묻히지 않으려고 조심히 다가가서 문을 열었어요.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외치며 말이죠.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공룡 시대 화산 폭발 알죠? 딱 그 모양새라고 생각하면 돼요. 다만 산이 아니라 변기 뚜껑이 덮인 채로 그 위에 거대한 똥 화산이 화내듯이 놓여 있었어요. 그리고 용암이 흘러서 화장실 가운데 있는 배수구로 흐르고 있었던 거고요. 그렇게 선배 선생님과 저는 상황 파악을 끝냈어요. 문제를 파악했으니 이제는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일이었죠.
제가 먼저 제안했어요. “선생님! 호스로 물을 뿌려서 없애 볼까요?” 그러자 선배 선생님은 단호하게 거절했어요. “아뇨. 그러다 정말 똥 화산 폭발에 이어 똥 홍수 난리가 날지도 몰라요. 우리 신중하게 고민하고 움직이도록 하죠.” 이제야 선배 선생님의 모습을 묘사하지만, 프랑스 유명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닮은 선생님께서는 턱에 손을 괴고 고민에 빠지셨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똥 냄새는 점점 코를 자극하더군요. 아쉽게도 그때는 코로나가 있던 시기가 아니라 마스크를 쓰지 않았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호흡 곤란을 느꼈죠. 그러다 코가 마비될 만큼 시간이 지나자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긴급 상황이니 이렇게 하시죠, 일단 제가 화산을 제거할 테니 선생님은 양동이에 물을 채워 오세요.” 선배 선생님의 솔선수범 아래 저는 보조하는 역할을 했어요. 선생님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단번에 변기 뚜껑에서 똥 폭탄을 제거하셨어요. 그리고는 “쓰레기봉투!!!”라며 다급하게 외치셨어요.
다행히 제 옆에 하얀색 쓰레기를 담는 봉투가 있었고, 바로 달려와 봉투를 벌렸어요. 제가 예상한 다음 상황은 똥을 봉투로 넣는 거였어요. 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 선생님께서는 쓰레받기를 구기시더니 통째로 봉투에 담았어요. 저는 신속하게 봉투를 돌돌 말아서 폭탄 잔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했어요. 그렇게 1차 폭탄 제거는 무사히 끝났어요. 큰일을 해내니 나머지 청소는 조금 자신감이 붙었어요. 화산 폭발을 막았으니 다 된 거죠.
양동이 물을 부어가며 변기 뚜껑부터 주변을 청소했고, 바닥에 흩어진 용암을 모두 제거했어요. 마침 락스도 화장실 창고에 있길래 열심히 부어가며 청소했어요. 사건이 그렇게 서서히 마무리되었어요. 바닥을 없앨 기세로 청소해서 그런지 빗자루 2개도 너덜너덜해져서 다른 쓰레기봉투에 담았어요. 재생 불가라는 걸 서로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죠.
우리는 마치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사건을 일단락시키고 사이좋게 봉투 하나씩을 들고 쓰레기장으로 향했어요. 안타깝게도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특히 자연의 섭리를 이기지 못하고 급하게 화장실에 달려 들어왔던 그 학생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무덤까지 가져가자고 했어요. 비록 그때 다짐은 그렇게 했지만, 신규 선생님들을 위해 이야기해드렸어요. 교사로 근무하면서 우리는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를 일이기에 마음의 준비하시라고 말이죠.
저는 그날 이후로 제가 하는 다른 환경 관련 업무는 일도 아니었어요. 기다란 장대를 들고 다니며 학교 전체 복도 모서리에 생긴 거미줄을 떼는 일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였죠. 사람은 참 간사해요. 힘든 일을 겪으면 다른 일은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지거든요. 이왕이면 힘든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우리 인생이 그렇지는 않네요. 그리고 사실 이 똥 사건도 다른 사건과 비교해보면 별건 아니었어요.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만큼 더 힘든 일도 있었거든요. 그 이야기는 뒤에서 천천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학교에서 내가 교사인데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일이 있으신가요?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정말 경험해보지 못한 모든 일을 책임지고 해야 해요. 학교에서는 교사가 곧 부모랍니다. 그런 마음을 먹는다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거예요. 그게 비록 똥 폭탄을 제거하는 일이라도 말이죠.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힘내서 어려운 일들 잘 해결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