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도 이제 1급 정교사랍니다
학교에서 교사로서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하는 게 무엇일까요? 저는 관리자분들께 귀가 닳도록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교사는 수업이 바로 서야 학생들이 잘 따르게 된다’는 거였어요. 학교에서는 수업, 생활지도, 상담, 학급운영, 행정업무 등 다양한 일이 있지요. 그중 수업을 가장 먼저 신경 써서 잡아야 한다고 해요. 그 이유가 뭘까요?
잘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수업’ 관련 일이에요. 물론 보직교사(부장)의 경우에는 수업의 비중보다 업무의 비중이 더 크게 느껴질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수업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건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신규교사로서 수업은 가장 두려운 일이랍니다. 아무리 대학교 혹은 대학원에서 교육학 이론을 철저하게 공부하고 왔다고 해도 실전은 다르기 때문이죠.
이론 책으로 전쟁 관련 지식을 배우고, 전쟁터에 나가보면 현실은 너무나 냉혹한 것과 같다고 봐요. 공감이 안 될 수 있으니 좀 더 현실적인 비유 해볼게요. 운전면허를 책으로 배우고, 실내 시뮬레이션 장비로 연습해서 간신히 운전면허를 땄다고 가정해보세요. 자 이제 도로로 나가서 운전할 차례가 되었네요. 첫 운전 경험은 어땠나요?
저는 아직도 혼자서 처음 차를 끌고 나간 날을 잊을 수 없어요. 도로에서 조심해야 할 세 가지 버스, 택시, 오토바이를 모두 만났거든요. 버스 뒤를 쫓아가는데 갑자기 멈춰서 놀라고, 택시는 더 갑작스럽게 멈춰서 더 놀랐어요. 그리고 오토바이는 분명히 제 시야에 없었는데 갑자기 좌우로 튀어나오는데 귀신 본 것처럼 운전대를 잡고 소리치며 자지러지게 놀랐답니다.
도로 위에 초보 운전자로서는 앞만 보고 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학생들 모습은 안 보이고 자기가 준비한 수업 내용만 보이죠. 아마 대부분 일주일 정도는 수업을 해봐야 조금씩 학생들 얼굴이 보이고, 표정이 보이고, 수업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 분위기도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어느 정도 운전에 익숙해지면 여유 있게 전방, 측방, 후방 모두 다 살필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저의 초임 시절 수업 시간을 떠올려보니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네요. 저는 12년 동안 세 군데 학교에서 근무를 했는데, 첫 수업은 모두 망했어요. 첫 학교에서는 영어 듣기 수업이었어요. 수업 때 나만의 무기가 없었던지라 알 없는 뿔테 안경을 쓰고 연기하듯이 수업했어요. 특히 무언가 설명할 때는 “제임스를 불러서 설명을 들어보자!”라고 외쳤어요. 수업 분위기 장악에 자신이 없으니 무언가를 활용했던 거죠.
그리고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캔디나 캐러멜 종류의 간식을 준비했어요. 퀴즈를 내고 맞추면 보상으로 주는 방식으로 수업했죠. 그런데 아이들이 참여가 낮아서 고민했어요. 꾀를 낸 것이 수업 중간에 초성 퀴즈를 해서 맞추면 보상을 주며 분위기를 환기시켜야겠다 싶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수업 관련 질문에는 답변은 하지 않아도 초성 퀴즈를 열심히 맞추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어요. 저보고 수업 시간에 퀴즈를 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솔직하게 중간에 분위기 환기를 위해 퀴즈를 한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퀴즈는 그만하고 수업에 더 집중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 했어요. 복도에 지나가시는 걸 본 적이 없었거든요.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민원 전화가 왔다고 해요. 고3인데 수업 시간에 쓸데없이 초성 퀴즈나 하고 있다고 항의했다고 하네요. 아마도 공부에 열의가 있었던 한 학생의 학부모 전화가 아닌가 싶었어요. 나머지 학생들은 즐거워했지만, 민원이 들어오면 저희는 조치를 취해야 하기에 그날 이후로 초성 퀴즈 시간을 없앴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활기가 사라지더라고요.
게다가 교감 선생님께서는 제 수업 시간에 조용히 티 안 나게 복도로 지나가시더라고요. 그리고 한참을 복도 끝에서 기다리시더니 제가 수업만 진행하니까 유령처럼 조용히 유유히 사라지셨어요. 아무래도 제가 혹시라도 민원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염려해서 확인차 오신 것 같았어요. 저의 첫 번째 학교에서는 이런 일을 겪었답니다.
두 번째로 근무했던 학교는 일반고인데 여고였어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남고보다는 여고에서 수업을 포함하여 사소한 일에도 아이들과 학부모님이 더 민감했던 것 같아요. 드디어 독해 수업을 해볼 수 있겠다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첫 수업을 진행했어요. 대학원에서 배운 최신 교리를 이용하여 멋지게 학생 중심 수업을 진행했죠. 그런데 아이들이 생각처럼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더라고요.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어요. 첫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 여학생이 저를 붙잡았어요. 그리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어요.
“선생님! 저는 오늘 수업 들으면서 수업 방식이 신선해서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저희는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고,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영어를 잘하지 않아서 강의식으로 해주시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가능하시다면 수업 방식을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학부모 민원이 아닌 다이렉트로 학생이 제게 민원을 넣었던 것이죠. 물론 너무 예의 바르고, 호의적인 태도로 말을 건넸기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살짝 부끄럽더라고요. 덧붙여서 저랑 팀으로 가르치시는 선생님 이름을 말하며 그 선생님처럼 수업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는 제 얼굴은 더욱 울긋불긋해졌답니다.
다행히도 저는 열린 마음을 가진 교사였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학교로 민원 전화가 온 게 아니고 학생이 직접 말해주니 더 좋은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바로 수업 방식을 바꿔서 제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방식 그대로 강의식 수업을 진행했지요. 갑자기 수업 방식을 바꾸게 되어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했어요. 이해하는 눈치였는데, 또 수업이 끝나니 또 다른 한 학생이 제게 부탁을 하더군요.
“선생님! 저희가 ‘하’ 반이라서 영어 기초 지식이 많이 부족해요. 선생님이 하시는 끊어 읽기를 잘 모르겠어요. 조금 더 쉽게 수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어요. 이 학교는 영어를 ‘상’ 반과 ‘하’ 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했어요. 저는 ‘하’ 반을 맡았는데, 일반고라도 해도 학생들의 영어 기초가 많이 부족했던 것이었죠. 그렇게 저는 두 번이나 좌절을 맛봤어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러니 내가 수업을 못하는 교사인가? 자괴감에 빠졌어요. 순간 학교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도 들었어요. 동료 교사나 선배교사한테 지적을 받았어도 충격이 컸을 텐데 직접적으로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니 더 충격이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정도로 물러설 제가 아니었기에 부족하면 노력하는 저였기에 마음을 다잡았어요.
이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해봤어요. 아이들은 자꾸만 영어 기초가 부족하다고 하니 기본적인 어휘부터, 구문, 문장 구조 분석 등 제가 준비해서 떠먹여 주듯이 수업을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교과서에 있는 모든 어휘와 문장에 필요한 요소를 모두 체크한 다음에 프린트로 만들어서 나눠줬어요. 다행히도 바로 적용한 수업에서 학생들의 얼굴 확인해보니 입가에 미소가 보였어요.
그렇게 1년 간 열심히 노력해서 수업 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킨 덕분에 다음 해에는 아이들이 제 수업을 좋아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심지어 새로 오신 선생님한테 배우는 아이들이 저한테 와서 하소연을 할 정도였어요. 자기네 반을 맡아주면 안 되겠냐고 말이죠. 그 선생님도 저처럼 수업 신고식을 제대로 치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누구나에게 같은 일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부족함을 인정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예요. 세 번째 학교인 외고에 와서도 일반고에서 하던 방식으로 수업을 했더니 불편함을 드러내더라고요. 아는 것은 적당히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주길래 바로 고쳤죠. 그래도 한 학기 정도는 수업 영점 조준을 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네요.
지금은 어떻냐고요? 학생들이 100% 만족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수업 중간에 5분 정도는 패턴을 만들어서 잠시 분위기 환기를 하고요. 봄에는 스트레칭 체조, 여름에는 무서운 이야기, 가을에는 연애 이야기, 겨울에는 다시 스트레칭 체조를 넣어서 수업을 진행해요. 물론 수업 수업 시작할 때는 주의를 끌기 위해 일상적인 이야기도 나누고요.
결국 고등학교 50분 수업 중에 10분 정도는 수업을 하지 않아요. 그래도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게 하거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틈을 마련할 수 있어서 더 효과적이랍니다. 전반부 20분 후반부 20분 초집중해서 수업을 진행한답니다. 아이들의 만족도는 이게 더 높은 것 같고요.
교사로서 수업은 항상 업그레이드를 위해 고민해야 할 영원한 숙제인 것 같아요. 하지만 나만의 레퍼토리 혹은 무기가 생긴다면 분명히 만족스러운 수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저는 심지어 집중시키려고 관종(관심을 부르는 종)을 들고 다니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도구 없이도 집중시키는 건 충분히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잊지 않고 계속 앞으로 행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