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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Sep 09. 2024

*심장마비(4)

휴직하기까지 한 달간 이 팀장의 횡포는 더 심해졌다. 휴직만 아니었으면 이 팀장 얼굴에 사직서를 던져버리고 나왔을 거다. 이제 곧 끝이 보이니까 참고 또 참아냈다. 하지만 내 심장은 버거워했다. 자꾸만 심장 근처가 쪼여왔다.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한숨을 몰아쉬며 하루하루 버텼다. 다행히 숨이 멈추지는 않았다. 매일 아침 다행히 심장도 뛰었다. 운전하며 출퇴근 길은 지옥 길이었지만, 끝이 있는 과정이기에 견딜 수 있었다.     


한 달이 지났다. 드디어 끝났다. 출근은 이젠 내 사전엔 없다. 착각은 자유다. 일주일 동안 이 팀장의 전화로 불이 났다. 새로 온 사람에게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라고 했다. 출근만 안 했을 뿐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오던 이 팀장의 연락은 일주일 뒤부터 오지 않았다. 나 과장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었다. 밤새 야근하던 나 과장이 아침에 심장이 멎은 채로 발견되었다.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한다. 사유는 심장마비였다.    

  

나 과장은 나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첫 직장에서 만났던 동기였다. 둘 다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가 다시 여기서 만났다. 우리 팀에 내가 온 것도 나 과장도 한몫했다. 나를 자기 팀에 적극적으로 추천했기 때문이다. 영업직을 주로 경험했지만, 나는 기획 아이디어 내는 것을 좋아했다. 나 과장은 종종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내게 전화를 하곤 했다. 덕분에 사회에서 만난 친구지만 친분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시작은 좋았다. 손발도 잘 맞았다. 업무 강도가 센 대기업이어도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그땐 팀장이 바뀌기 전이었으니까.  

   

이 팀장이 새로 승진해서 우리 팀을 맡으면서 지옥 같은 불구덩이 삶이 시작됐다. 승진에 눈이 먼 이 팀장은 계속 우리 팀원들을 괴롭혔다. 나는 아이가 둘이라서 가끔은 아이가 아프다는 이유로 야근을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아직 미혼인 팀원들은 매일 야근이었다. 주말도 없었다. 그 와중에 나 과장은 내년 승진도 걸려 있어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이 찌는 체질인데, 나 과장은 살이 쪽쪽 빠졌다. 안 그래도 마른 체형에 안쓰러워 보이는데 점점 기아가 되어 갔다. 스켈레톤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았다.      

우린 서로 체형은 반대편을 향해 달려갔지만, 똑같이 겪는 일이 있었다. 둘 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심장이 조여왔다. 한숨 쉬며 심장 부위를 손으로 쓸어내리곤 했다. 심장이 아픈 건 멈추라는 신호였을지도 모르겠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매일 짊어지고 버텨내는 삶이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터질 일이었다. 터지지 않는 게 이상했다. 나 과장의 폭탄이 아니라면 내 폭탄이 터졌을지도 모른다. 터지기 직전 불씨를 꺼버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 과장은 마흔 즈음에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휴직하던 날 조만간 사우나 가자고 약속을 했기에 곧 만나러 가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 과장의 부고 메시지를 받았다. 더는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었다. 자꾸만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함께 찍었던 폴라로이드 사진을 꺼내어 보았다. 우리의 모습은 딱 마흔. 이제 사회에서 제대로 놀아볼 나이다. 꿈을 펼칠 나이다. 정점을 찍을 나이다. 죽기엔 우리 나이는 너무 젊었다.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이 폴라로이드 사진 위로 뚝뚝 떨어졌다. 한 방울은 나 과장의 얼굴을, 다른 한 방울은 내 얼굴을 가렸다. 사진에 떨어진 눈물 때문인지 내 눈에 가득 찬 눈물 때문인지 우리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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