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노아 형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노아 형은 어릴 적 내 우상이자 영웅이었다. 2살 많은 형은 뭐든 잘했다. 뭐든 잘해서 선배, 후배, 동기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았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연기도 잘했다. 요새 말로 ‘인싸’ 혹은 ‘인플루언서’ 쯤 되겠다. 내 눈엔 연예인보다 노아 형이 더 멋진 영웅이었다. 영웅은 사람들이 따른다. 나도 그 사람 중 하나였다. 사촌 동생이라는 특수성만 빼면 말이다.
실제 내 삶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가 아니라 ‘노아 형 따라 강남 간다’였다. 노아 형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중학교 땐 형 따라 농구, 축구하러 다니고, 고등학교 땐 형 따라 시를 쓰고, 연극부에서 들어갔다. 노아 형은 개척자요. 나는 열렬한 추종자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따라 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이상을 좇은 형과 현실을 좇은 나는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형은 작가의 길로 나는 취업의 길로 나섰다. 형은 미혼의 삶을 나는 기혼의 삶을 살고 있다.
작가의 길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땐 평탄치 않았다. 그렇지만, 노아 형은 항상 행복해했다. 적당히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를 벌고, 나머지는 책을 읽고 쓰는 일에 몰두했다. 마흔이 되던 해 형은 제주도로 떠났다. 아는 선배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 숙박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형의 삶에 딱 맞는 조건이었다. 단 하나 고민이 있다면, 결혼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경제 활동은 결혼을 보장하지는 않는 시대니까. 모든 건 기회비용이다. 선택 후 후회만 안 하면 된다. 형은 후회는 사치라고 했다. 짧은 생을 채우기도 모자란 데 후회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했다. 그래서 한치 망설임 없이 떠났다.
비행기는 육지를 벗어나 남해를 건너고 있었다. 창가에 앉은 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바다 색깔이 특이했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바다에 지도를 그렸다. 작은 섬들 사이마다 다른 바다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게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상상력은 다른 종의 해양 생물을 기르는 양식장쯤이 아닐까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니라면 외계 행성이 되어야 하니까.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 그 지점을 벗어나니 저 멀리 탐라국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제주도에 온 것도 형을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거의 10년 만이었다. 결혼 후 그 어디에서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매일 야근, 집에서는 매일 육아 그게 내 삶이었다. 10년간 ‘나’라는 존재는 없었다. 직장인, 남편, 아빠로 살았다. ‘유진’이라는 이름 두 글자는 단순한 글자일 뿐 그 누구도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라 후회할 수도 물러설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나만 그런 인생을 사는 건 아니겠지만...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는 거친 엔진 굉음을 내며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심장이 살짝 조였다. 그런데 조이는 느낌이 달랐다. 스트레스가 아닌 설렘과 기대감이었다. 첫사랑 때문에 떨리는 가슴으로 밤새 잠 못 이루던 그 느낌. 오랜만에 느끼는 두근거림이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감정이었다. 언제부터 사라졌던 것일까? 내 가슴은 사하라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과연 사막에 꽃은 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