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물을 기다리며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잘 도착했어?”
“응”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일주일 동안 푹 쉬다 와.”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애들 데려가면 가나 마나지 뭐.”
“하긴 그랬겠다.”
“나중에 애들 크면 우리끼리 또 가자.”
“그래. 그래.”
“힐링 많이 하고 와. 매일 연락 안 해도 돼.”
“알겠어. 가끔 연락할게.”
“아니, 제발 하지 마. 혼자만의 시간 충분히 보내고 와!”
“그럼 분부대로 할게.”
“응, 잘 지내. 안녕!”
다행히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는 밝았다. 진심으로 내가 푹 쉬었다 오길 바라는 눈치였다. 전투력이 회복되어야 다시 육아 전선에 투입될 수 있을 테니까. 꼭 그런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스스로 찔려서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얼마 만에 갖는 혼자만의 시간인가.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우!’ 너무 아팠다. 꿈은 아니었다. 꿈같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꿈은 오래가지 않는다. 언젠가는 깨니까. 꿈같은 시간은 금방 끝난다. 후회 없이 보내야 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헤매며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하와이에서나 볼 법한 꽃무늬 셔츠에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한 손에는 피켓이 들려있었다. ‘Welcome! 유진!’이라 적혀있었다. 유치했지만, 취향 저격이었다. 까만 선글라스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건 노아 형이었다. 두 팔을 벌려 갈비뼈가 부서지도록 부둥켜안았다. 재빨리 오른손으로 서로 팔씨름하듯 손을 잡고 다시 어깨 부딪히며 말했다.
“Yo! bro!”
어릴 적부터 해오던 우리만의 인사법이었다. 짐을 들어주겠다고 제스처를 하는 형의 손을 뿌리쳤다. 앞으로 안내나 하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티격태격 싸우며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10년 만에 보는 형은 그대로였다. 새치와 이마에 주름만 조금 더 늘었을 뿐이었다. 형을 만나니 10대가 된 것 같았다.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과 만나면 그때의 추억이 살아나니까. 몸은 40대지만, 마음은 10대가 되었다. 제주도의 기운이 벌써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화산섬도 솟아오른 땅이니까 기운이 좋지 않을까? 해안 도로를 따라 형이 일하는 카페로 향했다.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동해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오늘만큼은 제주 바다가 최고다. 가치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