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과장님, 결과 보고서 언제 줄 수 있나요?” 출근과 동시에 이 팀장이 말을 건넸다. 이 팀장은 우리 회사에서 강박증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팀원들에게 1초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어젯밤 11시에 출장 일정이 끝났는데, 출근과 동시에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닦달한다. 출근 후 차근차근 오전 중에 정리해도 충분할 텐데 잠시도 기다리질 못한다.
이 팀장은 눈빛이 날카롭다. 매의 눈으로 끊임없이 주변을 살핀다. 동공은 항상 불안하게 움직이고, 시선을 고정하지 못한다. 고민의 깊이만큼 이마 주름도 깊게 잡혀있다. 입술을 꽉 다문 모습을 보인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항상 굳어 있다. 긴장한 탓인지 어깨가 솟아 있고,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마우스에 있던 손을 자꾸만 움직여 머리카락을 쥐어짠다. 반면에 옷차림은 항상 단정하다. 365일 내내 하얀 셔츠에 정장 재킷을 입고 온다.
살이 찌는 사람은 점점 옷이 커진다. 마른 사람은 항상 옷이 그대로다. 이 팀장은 깡마른 몸이다. 성격이 사람의 몸을 만든다고 하는데, 생김새만으로 성격이 어떨지 가늠이 된다. 관상은 과학이다. 예상은 언제나 벗어나지 않는다.
20대에는 모든 게 새로워서 일이 힘들었다. 30대에는 일이 어느 정도 적응되니 사람 때문에 일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40대가 되니까 모든 건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일 때문에 힘든 건 그냥 버틴다. 이미 무뎌졌으니까. 하지만 사람 때문에 힘든 건 어쩔 수 없이 참는다. 내가 무너지면 가족이 무너지니까. 이 팀장은 나에게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상사였다. 아니 누구라도 힘들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건 지금 있는 팀의 업무 성격이 나랑 맞지 않는다. 대기업으로 이직하면서 처음엔 영업직 경력으로 들어왔다. 내 커리어의 대부분은 영업직이었다. 하지만 급히 기획팀에서 인력 부족으로 나를 데려가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한 번 자리를 잡고 나면 팀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대기업은 시스템이 크게 움직이기에 중소기업처럼 자리를 쉽게 바꿀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리는 누군가로 언제든 대체될 수 있었다. 사람은 단순히 쓰이는 부품일 뿐이니까.
휴직하려면 대기업은 절차가 복잡하다. 내가 속한 팀장과 상무 승인에 이어 인사 팀장과 상무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 아무리 육아 휴직이 가능하다고 해도 이유가 분명해야 했다. 거짓말이지만, 나는 아내가 일을 시작해서 육아 휴직이 필요하다고 이 팀장에게 말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꼭 지금 시점에 휴직해야 합니까?” 안 그래도 깊은 이 팀장의 이마 주름이 더 파였다. 평소에는 날카로운 모습이었는데, 화난 모습은 성난 사마귀 같았다. 금방이라도 날카로운 앞다리로 내 얼굴을 할퀼 것만 같았다. “네.”라고 나는 짧게 대답했다. 내 얼굴을 뚫어지도록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휴직 한 달 전 신청인 건 아시죠? 인사과에 연락해 보세요. 인수인계는 다 해주고 가야 합니다.” 다행히 거절당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 까다로운 이 팀장도 법은 무서웠나 보다. 육아 휴직은 민감한 사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