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기운이 올라왔다. 감미로운 재즈 음악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대화하는 소리도 점점 커졌다. 노아형과 이브의 말이 잘 안 들리기 시작했다. 술이 약한 내가 항상 겪는 현상이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니 시각 감각이 강해진다. 한국인처럼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이브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이브의 키는 약 170cm 정도로 크고 날씬했다.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는 마치 체조 선수처럼 균형 잡힌 느낌을 주었다. 피부는 새하얗고, 매끄럽고 건강한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길게 뻗은 금발 머리카락은 조명 아래에서 금빛으로 반사되었다. 자연스러운 웨이브가 끝부분에 걸쳐 부드럽게 흩어졌다. 머리카락을 뒤로 넘길 때마다 그녀의 목덜미와 귓가를 스치는 듯, 잔머리 몇 가닥이 부드럽게 떠다녔다.
눈은 깊고 투명한 파란색으로, 마주할 때마다 마치 비밀을 감춘 듯한 묘한 매력을 풍겼다. 그녀의 속눈썹은 길고 짙어서 눈을 깜박일 때마다 섬세한 그림자를 얼굴에 드리웠다. 코는 곧고 오뚝했다. 입술은 자연스럽게 도톰해서 무심코 미소를 지을 때조차 매력적으로 보였다. 웃을 때 드러나는 보조개는 그녀의 전체적인 차분함 속에서 따뜻한 느낌을 더해 주었다. 오늘 만난 사이지만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이브는 단정한 흰색 블라우스에 연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블라우스 소매를 살짝 걷어올려 손목이 드러났다. 손목에는 얇고 심플한 실버 팔찌가 반짝였다. 'EVE'라는 3글자가 적혀있었다. 가끔씩 웃으며 입을 가리는 모습을 통해 보이는 이브의 손가락은 길고 섬세했다. 젊음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이브는 젊은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만일 내가 20대나 혹은 30대 미혼이었다면, 분명히 한눈에 반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브의 미모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였다.
"외국인인데 한국말을 엄청 잘하시네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이브가 눈에 띄었나 보다. 외국인 외모에 한국말을 한국 사람보다 더 유창하게 하는 모습을 보니 호기심이 들만도 했다. 그는 명함을 하나 내보이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판타지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는 사이먼라고 합니다."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는 유명한 작가였다. 100만 부나 팔린 <그녀는 예뻤다> 소설을 쓴 사람이었다. 'East of Eden' 카페에 유명한 예술가들이 가끔 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유명 인사를 만날 줄은 몰랐다. 반가운 마음에 내가 먼저 선수 쳤다.
"<그녀는 예뻤다>를 쓰신 사이먼 작가님이시군요!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