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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Sep 30. 2024

*에덴의 동쪽(3)

돌이켜보니 결혼 후 나의 삶은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이 아니었다. 집을 사느라 대출을 받고, 빚이 있으니 일을 쉴 수 없었다. 첫째가 태어났고, 둘째가 2년 뒤 이어서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니 아내는 일을 관뒀다. 매달 나가는 돈은 더 늘어나는데, 아내가 모아 놓은 돈은 점점 사라져 갔다. 내가 버는 돈만으로는 더는 버티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아내가 다시 일하기엔 아이들이 너무 어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지만, 현실은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삶이었다. 매일 야근의 연속이었으니까.     


사무실에서 매일 저녁이 되면 노을이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사무실 창으로 바라보는 노을은 아름답지 못했다. 마음이 즐거워야 자연도 아름답다. 매일 일에 시달리는 삶은 여유를 주지 않았다. 숨 막히는 삶.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항상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나에게 주어진 원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집에서는 잠만 자고 회사로 매일 출근해서 거의 종일 쇠사슬에 묶인 채로 일하는 노예로 살았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대기업 다니는 직장인일 뿐... 나는 분명한 노예였다. 누군가로 대체되는 삶은 한낱 부품일 뿐이니까.     


어느새 하늘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경계선 위로 핑크뮬리 꽃이 만발했다. ‘East of Eden’ 카페에도 노란 조명등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낮에는 브런치 카페와 같은 분위기였다면, 해가 사라진 후에는 마치 어느 재즈바와 같았다. 실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재즈바가 맞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도 바뀌었다. 음료보다는 식사 위주로 주문했다. 와인과 스테이크, 맥주와 프렌치프라이 등 술은 빠지지 않고 테이블 위에 하나씩 올라가 있었다. 저녁 7시 바리스타의 시간은 가고, 바텐더의 시간이 왔다. 바리스타 역할을 맡았던 노아 형과 이브는 옷을 갈아입고 내가 앉은자리로 왔다.      


“유진아, 여기 저녁 메뉴 맛있어. 딱히 가고 싶은 곳 없으면, 오늘은 여기 음식 먹어봐.”

“그래?”
 “정말이야.”
 “그럼 간단히 먹을까?”
 “든든하게 먹어! 티본스테이크 맛있어. 직원 할인 있으니까 내가 주문해 줄게.”

“현지인이 강력히 추천하는데 먹어봐야지. 알겠어. 그럼 다른 것도 시켜서 같이 나눠먹자.”
 “그래 그럼.”     


그때 바로 옆에 있는 이브가 눈에 들어왔다. 이브도 시간이 되면 같이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싶었다.      


“아! 이브도 시간 되면 같이 먹을래요?”
 “물론이죠. 일부러 이번 주는 약속 안 잡았어요. 저도 같이 놀고 싶어서요.”

“좋네요. 그럼 같이 먹고 놀아요!”

“무슨 술 좋아하세요?”

“저는 술을 잘... 이브가 좋은 걸로 시켜요. 저는 다 괜찮아요.”

“그럼, 와인 한 병 시켜요. 한 잔 정도는 괜찮죠?
 

나는 조용히 고개만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며 대답했다. 솔직히 나는 무슨 술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기에 그랬다. 이브는 눈치가 빨랐다. 내가 머뭇거리니 더는 자세히 묻지 않고, 와인 한 병을 시켰다. 와인과 먹는 스테이크는 금상첨화였다.      


붉은색 빛이 도는 와인을 전용 잔에 따랐다. 와인은 유리잔에 먹어야 제맛이다. 눈으로 한 번, 코로 한 번 먼저 마셔야 한다. 그리고 입에 한 모금 머금고 혀로 천천히 입안에 있는 와인의 맛을 느껴본다. 와인 잔을 들고 있으면서 만든 적당한 온도의 열이 전달되어 내 몸과 하나가 된다. 살짝 핑크빛 살을 보이는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잘라 보기 좋게, 한입에 넣기 좋게 잘랐다. 소고기는 입안에서 ‘샤르르’ 녹고, 와인은 내 몸을 감싸 안으며 따뜻하게 데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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