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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Sep 15. 2024

*에덴의 동쪽(1)

‘East of Eden’에서 Eve와 짧은 대화는 유쾌했다. 카페 매니저로 일하는 노아 형과는 말 한마디 섞기 힘들었다. 비교적 여유 있게 일하는 Eve와는 종종 짬이 날 때마다 대화했다. Eve가 한국에 온 이유, 그것도 제주도로 목적지를 정한 이유 등을 들을 수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 휴학하고, 한국 문화를 경험하러 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동경하던 서울에서 1년 동안 지내려고 했는데, 보증금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에어비앤비에 머물면서 1년 월셋집을 구하러 다녔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찾은 부동산 사장님은 매우 친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기꾼이었다. 여러 고객이 월세 계약을 하게 하고 보증금을 꿀꺽한 후에 잠수를 타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때 자기와 똑같이 사기당한 한국인 여대생이 있었는데, 그 일로 친분이 생겼다고 했다. 그 여대생은 제주도 출신인데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해서 자취방을 구하려다가 사기당한 것이었다. 마침 부동산 앞에서 사기꾼을 기다리던 둘은 대화를 하게 되었고, 사정이 딱하니 급한 대로 Eve가 살던 숙소에서 같이 며칠 묶으며 친해졌다고 한다. 대화 도중 여대생의 친인척이 제주도에서 카페와 펜션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침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고 있었는데, 마침 Eve를 만난 것이다.      


Eve는 바리스타, 소믈리에, 바텐더 자격증이 모두 있었고, 고등학생 때부터 계속 관련 일을 해왔다. 게다가 외모는 외국인이지만 한국어도 잘했다. 결정적으로 외국인을 상대할 일이 많은 곳이라 영어 능통자 우대사항에 적합했다. 원래는 서울에서의 삶을 꿈꾸고 한국에 왔지만, 운명처럼 제주도로 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때론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기회는 갑자기 찾아오고,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다. 운명도 사실은 알고 보면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선물 같은 게 아닐까.     


“심심하지?” 노아 형이 좀 여유가 생겼는지 말을 걸었다.     

“아니, 혼자 잘 놀고 있어. 멍하니 바다도 볼 수 있고 좋아.”

“점심시간이라 바빴어. 이제 좀 숨 좀 돌리네.”

“종일 이렇게 서 있으려면 힘들겠다.”
 “이젠 적응돼서 괜찮아.”

“글 쓰는 건 잘 되어 가고?”

“뭐 항상 같지 뭐. 일할 땐 밤에 피곤함에 곯아떨어져 못 쓰고 있어. 쉬는 날에나 이곳저곳 다니며 사색하고 글 쓰고 있지.”

“그래도 형이 꿈꾸던 삶이지?”
 “그렇지. 조금 몸이 힘들긴 해도.”

“결혼 포기한 건 후회 안 해?”

“전혀. 모든 선택에는 포기가 따르는 법이니까.”

“근데 아직 기회가 없는 건 아니지 뭐.”

“물론 그렇기도 하지.”

“넌 오늘 저녁엔 뭐 할래?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말해봐. 이따가 일 끝나면 데려다줄게.”

“글쎄, 천천히 생각해 볼게. 추천할 만한 곳 있으면 알려주고.”

“그래. 잘 고민해 봐. 물론 먹을 건 여기 근처에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하니까 피곤하면 멀리 안 가도 되고. 내일은 내가 쉬니까 그때 멀리 같이 가던지.”

“응. 그러자. 오늘은 좀 쉬면서 근처 구경해 보지 뭐.”
 “오케이. 그럼 일단 나도 일 마무리하고 다시 올게. 잘 쉬고 있어. 내가 바빠 보이면 Eve한테 필요한 것 말하고.”

“응, Eve가 있어서 이제 형 없어도 돼. 한국말도 잘해서 문제없음! 하하하.”

“그래. 있는 동안 친하게 지내. Eve도 일 안 할 땐 많이 심심해하거든. 괜찮다면 같이 놀러 다녀도 되고.”

“알겠어. 일단 편하게 일 봐. 나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저기 또 손님 왔네.”     


노아 형은 오른쪽 눈을 찡긋거리더니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에덴동산의 아담은 혼자라 외로웠겠지만, 나는 오히려 혼자인 게 좋았다. 그동안 온전히 나 혼자만을 위한 시간이 없었기에. 물론 여기 ‘East of Eden’에는 노아 형도 있고, Eve도 있으니 남은 일주일 외로울 틈이 없을 것만 같았다.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이니 괜찮다.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지내야 하는 그런 인간관계는 아니니까.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그런 인위적인 관계에 지쳐 있었던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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