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인간관계는 어떤 걸까? 한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이 친구로 지낼 수 있다면 그게 이상이 아닐까? 현실은 반대니까. 특히나 이 땅에서는 위계질서가 강한 직장에서 이상향을 꿈꾸기란 어렵다. 군대에서만 계급이 깡패인 줄 알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변한 게 없다. 오히려 더 심하다. 줄을 잘못 섰다간 진급이 물 건너가기도 하니까. 먹고 먹히는 냉혹한 경쟁 사회다. 정글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다. 그러니 인간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마흔 즈음이 되자 더는 막내는 아니다.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다. 하지만 왜 계속 나는 ‘을’인 것만 같은 느낌인지 모르겠다. 과거엔 선배한테 치이고, 현재는 후배들한테 치인다. 과거엔 선배가 술 마시자고 부르면, 나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서는 안된다. 꼰대가 되기 일쑤다. 요새 친구들은 과거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쉽게 직장을 그만두곤 한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위에 눈치 보느라, 아래 눈치 보느라 하루도 정신이 없다. 위에서도 아래서도 마음대로인데, 나만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내면의 진심은 숨긴 채 살아간다. 페르소나가 생긴다. 가면 말이다. 진짜 내가 아닌 사회생활용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내 페르소나는 ‘Yes맨’이었다. 누군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 호의를 베푸는 그런 사람. 곁에 두면 좋은 사람. 잘 도와주는 사람. 그렇게 10년을 살아오니 바꿀 수가 없었다. 갑자기 거절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바뀌었다고 평가할 테니까. 그게 두려워 변화할 수도 없다. 그러다 문득 알고 보니 호구가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호의가 호구가 되는 건 쉽다. 사람들도 다 눈치가 빠르기 때문이다. 부탁했을 때 먹히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요새 MZ세대 혹은 알파 세대 친구들은 달랐다.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항상 졌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회가 온다면 가면을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소심했다. 그랬다간 사람들에게 욕먹을 게 뻔하니까. 아니면 피하면 되는데, 가정을 지키려면 버텨야 했다. 그래서 남은 20년은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매일 막막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여행지에서는 모든 관계가 평등하다. 파라다이스이자 유토피아가 펼쳐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국적도 인종도 다 상관없다. 인위적인 관계로 얽히고설키지 않았으니까. 자연에서의 만남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존재들이다. 가면도 필요 없다. 스치고 헤어지면 그만이니까. 이해관계라는 게 생기기 전까지 가능한 유일한 관계다.
어쩌면 ‘East of Eden’에서의 만남은 모두 평등한 관계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낯선 곳이고, 낯선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남녀노소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믿는다. 언제나 친절했던 노아 형과도, 만난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유쾌한 Eve와도 친구다. 여긴 그동안 내가 속한 현실이 아니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현실은 바로 이곳이다.
‘유토피아도 별거 아니네.’ 속으로 생각했다. 파랑새도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처럼, 유토피아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왜 진작 혼자 여행할 생각을 못 했을까. 가장의 무게는 언제나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