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곱을 떼어 낸 게 뭐라고 기분이 좋았다. 1층에 도착하니 내가 꼴등이었다. 전부 성산 일출봉에서의 일출을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코리안 타임 없이 이렇게 시간을 지키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오늘 일출 시간이 6시 53분이기에 5시에 출발해야만 일출을 볼 수 있었다. 기회는 노력하는 자, 그리고 실천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법이니까. 우린 차를 타고 성산으로 이동했다. 제주도의 새벽 봄바람은 아직 매서웠다. 쌀쌀해서 창문을 열고 달릴 수 없었다. 다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어젯밤 꿈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꿈꾼다. 하지만 죽음이 부르는 곳을 유토피아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닌 시스템의 노예가 되어 부품으로 쓰이고 버려지는 건 아닐까?’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뒤로 보이는 멋진 봉우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성산 일출봉을 오르는 길은 마치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을 연상케 했다. 계산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이 많으니 중간에 쉬어가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유레카!”
나는 소리쳤다. 꿈에서 봤던 바로 그 장면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움푹 팬 커다란 분화구와 그 너머 망망대해의 바다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웅장해졌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세상은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해는 아주 천천히 떠올랐다. 하지만 에너지는 넘쳐 파도와 같이 넘실거렸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때 사이먼이 내게 속삭였다.
“저, 이따가 내려가면서 이브에게 말할 거예요.”
나는 입술에 힘을 주고 미소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사이먼도 하얀 이를 드러내며 같은 동작을 취했다.
어느덧 태양은 수평선을 다 올라와 붉은빛에서 황금빛으로 바뀌어있었다. 초록색으로 가득한 봉우리는 신호등처럼 색을 이어받아 출발 신호를 가리키고 있는 듯했다. 마치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앞으로의 삶에 초록 불이 들어올 것만 같았다. 새로운 출발의 신호이자 계속 달릴 수 있는 신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