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이 세상을 떠났다. 제주도에서의 운명적인 만남 후 3개월 만이었다. 스티브 잡스도 끝내 이겨낼 수 없었던 바로 그 암 때문이었다. 그가 허리춤을 계속 잡았던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 암에 걸리면 허리디스크인가 싶어서 병원에 가는데, 전혀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계속 헤매다가 나중에 말기가 되어야 제대로 진단을 받고 시한부로 살아가게 된다. 적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숫자와 상관없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니까.
아마도 사이먼이 제주도에서 우리를 만났을 때는 심한 고통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치료를 거부하고 소설 속 이야기처럼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고, 이브를 만난 후엔 하와이로 떠났다. 잃어버린 엄마를 되찾기 위해서. 언제나처럼 그렇게 그의 소설 속 이야기는 현실이 되었다. 그가 정한 운명인지, 아니면 정해진 운명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의 마지막 소설 <Lost Mother>는 유작이 되었다. 그가 출판사에 남긴 마지막 부탁이었다. 이미 원고는 아프기 전에 완성했지만, 자기가 세상을 떠난 후에 출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원래 책 제목은 <엄마>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이먼의 사정을 들은 편집자는 마지막에 제목을 바꿨다고 한다.
나도 나중에 소설을 읽어 보았다. 섬에서 만난 파란 눈의 소녀는 이브를 말하는 것 같았다. 혈육이라는 이야기도 들어있었다. 사이먼이 혈육을 만나게 될지는 그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어릴 때 미국으로 떠나 연락할 수 없었던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어디에서든 어머니의 혈육을 만나 다시 어머니를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 간절함이 만들어낸 운명이라 생각한다.
사이먼의 소식에 나도 바로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왔다. 사실은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그만두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하지만 사이먼은 분명히 내게 메시지를 전했다. 용기를 내라고 말이다. 성산 일출봉에서의 기운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뭐라도 다시 시작할 힘을 느껴보라고 말이다. 비록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내게 빨간 불을 켜고 멈춘 후에 다시 초록 불을 밝히고 새롭게 출발할 용기를 주었으니까.
내가 속한 세상이 전부라 믿고,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걸 꿈꿨다. 그것이 무척이나 잘 살아가는 길이라 믿어 왔다. 하지만 울타리는 안전을 보장하지만,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어쩌면 그 울타리는 누군가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의 삶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삶일지도 모른다.
사이먼은 끝까지 자신의 세상을 직접 만들며 살았다. 다른 사람이 만든 세상에 갇히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물론 두려울 것이다. 힘들 것이다.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어둠의 터널을 지나면, 분명히 밝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중간에 멈추지 않는다면 진정한 유토피아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