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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Oct 23. 2024

*유토피아(4)

덩치 닭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두 발로 나를 힘껏 뭉갰다. 닭이 날 수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머리를 쪼았던 것보다 더 심한 고통이었지만, 이미 고통 속에 있어서 뭐가 더 고통스러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이미 눈물범벅에 만신창이가 되었으니까.     


“이런 미친 닭을 봤나!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이놈이 물을 차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안 되겠다. 너는 야생으로 보내야겠어. 족제비나 여우에게 잡혀서 먹히도록 말이야. 제군들! 이 닭을 어서 울타리 밖으로 몰아내도록 하자!”     


나를 닭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확실하게 나는 닭이 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다른 덩치가 좋은 닭들이 나를 들어 올려서 울타리 밖으로 데려갔다. 울타리를 지나 벽 끝쪽으로 가니 커다란 돌 하나가 구멍을 막고 있었다. 덩치 닭들은 나를 내려놓고, 그 돌을 치웠다.      


그리곤 나를 몰아세워 그 구멍으로 들어가게 했다. 마치 어두운 터널 입구 같았다. 떠밀려 발걸음을 구멍으로 향했다. 그러자 뒤에서 돌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성급히 몸을 움직여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큰 돌이 ‘쿵’하고 구멍을 다시 메웠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그들이 말하는 야생이었다.      


덩치 닭들에게 당해 쫓겨났지만, 기분은 오히려 좋았다. 아니었다면, 도축장에 가서 닭고기가 되는 신세가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비록 그들이 말하는 유토피아에는 못 가지만, 나에게는 그곳이 진짜 유토피아는 아니니까 다행이었다. 오히려 그곳을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된 게 유토피아로 갈 기회가 생긴 건 아닐까 생각했다.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 자그마한 노란색 태양이 빛나는 곳으로 향했다. 밤에 봤던 붉은 태양과는 다른 더 힘이 느껴지는 태양 빛이었다. 점점 밝아지는 빛에 눈이 부셔 뜰 수 없었다. 어떻게든 눈을 떠보려고 노력하자 드디어 눈이 떠졌다.     


나는 산 정상에 우뚝 서 있었고, 저 멀리에는 황금빛 태양이 넘실거리는 파도를 힘차게 누르며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맞다! 성산 일출봉!’    

 

그때 잠이 깨면서 정신이 들었다.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을 손을 더듬거려 찾았다. 핸드폰 화면에는 ‘4:50’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휴~ 아직 안 늦었네’ 속으로 생각하곤 바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급한 대로 옷을 주워 입고, 모자를 눌러썼다. 세수할까 말까 고민하다 1층까지 느림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려니 늦을 것만 같아 포기했다.      


대신 걸어가면서 눈곱이라도 떼어 냈다. 하지만 꿈속에서 흘린 눈물이 실제로 굳어서 잘 떼어지지 않았다. 주머니 속에 있던 물티슈를 꺼내 응급처치를 했다. 물티슈는 역시나 만능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을 보며 모든 눈곱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4층에서 1층까지 가는 시간이 충분히 길어서 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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