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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Nov 24. 2020

<28> 연애 잘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인간관계 그리고 사랑에 관하여

옛말에 태어난 지 10,000일이 될 때까지 연애하지 못하면 용으로 승천한다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10,000일을 대략 계산해보면 한국 나이로는 29세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100년 전에만 해도 자유연애보다는 선을 보고, 결혼을 전제로 만났다. 그렇게 자유연애의 역사는 짧았지만, 현재는 연애를 안 하는 게 이상한 일이 되었다. 그만큼 29세 때까지 연애 못 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는 말이다. 근데 나에겐 연애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20대를 마치는 시기까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그 이유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건 바로 ‘사랑’ 관계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사랑의 3요소를 친밀감, 열정, 헌신이라 했다. 이 3요소가 정삼각형에 가까울수록 이상적인 사랑이라 했고, 이를 ‘사랑의 삼각형 이론’이라 부른다. 여기서 친밀감은 우정 관계에서도 볼 수 있는 애착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열정은 에너지를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이다. 헌신은 상대방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는 자세다. 연애 초기의 경우 친밀감과 열정이 강하지만, 헌신이 부족하고, 오래된 연인의 경우에는 친밀감과 헌신은 강하지만 열정은 부족한 경향을 보인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 짝사랑을 했지만, 실제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에너지(열정)가 있었지만, 상대방과 더 친해지려는 자세(친밀감)와 배려의 자세(헌신)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혹은 너무 친밀감이 강해서 상대방이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초, 중, 고 모두 남녀 공학을 나왔고, 여초 현상이 있었던 시대라 학교에서 여학생과 어울리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이것도 스턴버그의 이론에 대입해보면, 친밀감은 매우 강했지만, 이성에 대한 열정과 헌신은 부족했던 것 같다.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렬한 스파크가 필요하다. 그게 사랑의 단계에서 말하는 초기 사랑 에로스이다. 고대 그리스 학자 플라톤이 정의한 사랑의 속성을 4가지 단계로 정의했다. 1단계 육체적 사랑(Eros:에로스), 2단계 도덕적 사랑(Philia:필리아), 3단계 정신(신앙)적 사랑(Stergethron:스테르게트론), 그리고 마지막 4단계 무조건적인 사랑(Agape:아가페) 순이다. 플라톤의 주장에 따르면 단계를 올라가며 서서히 발전해 간다고 한다.       


캐나다 심리학자 존 앨런 리도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6가지 사랑의 유형을 정의했다. 낭만적 사랑(Eros:에로스), 게임식 사랑(Ludus:루두스), 동료적 사랑(Storge:스토르게), 논리적(실용적) 사랑(Pragma:프래그마), 소유적 사랑(Mania:마니아), 이타적 사랑(Agape:아가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명 '사랑의 색채 이론'이라고 불린다.           


사랑의 종류가 4개가 되든, 6개가 되든 시작은 ‘에로스’로 시작해서 최상위 단계에는 무조건적, 이타적인 사랑인 ‘아가페’가 위치한다. 근데 나는 아가페는커녕 29년간 에로스라는 1단계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적당한 이해관계가 성립되면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었지만, 연인 관계는 차원이 달랐다. 적어도 한번 관계가 형성되면 계속 유지할 관계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처음으로 연애하는 상대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눈이 높다.’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상대방을 보는 기준이 많거나 그 기준이 높거나 할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눈이 높았던 것 같다. 연애 분야의 전문 상담가들은 연애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일 준비가 안 된 경우가 많은 것이라 했다. 연애를 시작하려면 연애 세포를 깨우고 자신만의 세상에 누군가 들어오는 걸 허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데 실패한 내 인생을 회복하고 성장하는데 시간을 더 쏟느라 다른 사람이 내 세상에 들어오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직접 연애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가도 헤어지는 커플을 많이 봤다. 그렇게 간접적으로 사랑과 이별을 경험했다. 누가 들으면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책으로 연애를 공부하고 경험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 한 때 큰 이슈를 일으켰던 책을 읽으며 남녀의 차이에 대해서 알아봤다. 언젠가 연애할 사람과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픈 하나의 욕망이었다. 바쁜 시기를 보내고, 어느 정도 삶에 여유를 되찾을 무렵 생각보다 쉽게 사랑이 찾아왔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첫 직장에 취직했을 때 일이다. 이른 아침 전철을 타고 출근했다. 빠른 환승을 위해 매일 같은 칸에 탔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도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칸에 탑승했다. 사실 내 이상형은 키가 좀 큰 여자였는데, 아담했지만 어여쁜 그녀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근데 모르는 사람이니 관심만 갈 뿐 어찌할 수는 없었다.           


운명은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내가 다니던 학교는 한 학년에 16 학급씩 있는 규모가 큰 학교였다. 내가 근무하는 교무실은 많은 부서가 모여 있었다. 대략 세어봐도 한 교무실에서 근무하는 교사는 20명이 넘었다. 업무 때문에 다른 부서 선생님과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전철에서 만나는 그녀였다. 놀라운 건 사는 곳도 비슷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매일 출퇴근을 함께 하며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주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근데 모든 게 나와 비슷한 사람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사랑에 빠졌다.           


심리학 용어 중에 ‘핑크 렌즈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는 사랑에 빠져 상대방의 장점만 보이고 단점은 보이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다. 연애할 때 뇌에서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에 이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 인류학과 연구교수인 헬렌 피셔는 사랑에 빠진 수십 명의 커플에게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했는데, 이는 마치 마약 중독에 빠진 사람의 뇌와 비슷했다고 했다.           


헬렌 피셔 교수는 사랑을 3단계로 구분했다. 갈망 단계(1단계)에서는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라는 성호르몬이 성적 갈망을 일으킨다고 했다. 끌림 단계(2단계)는 도파민이 황홀한 느낌이 들게 하고, 아드레날린은 혈압을 상승시켜 가슴을 뛰게 하며, 세로토닌은 평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했다. 마지막 애착 단계(3단계)는 애착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을 생성하고 영향을 준다고 했다.   

        

미국 코넬대학교 신시아 하잔 교수는 2년 동안 미국인 5천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결과, 열정적 사랑의 수명이 평균 18개월에서 30개월이라는 결과를 알아냈다. 즉, 900일 혹은 2년 6개월에 해당하는 기간에는 뇌에서 나오는 호르몬에 의해 열정적인 사랑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근데 문제는 이 기간이 지나면 사랑의 호르몬인 페닐에틸아민이 급격히 감소한다고 했다. 페닐에틸아민은 도파민과 세로토닌, 엔도르핀 등 행복과 쾌감을 일으키는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한다. 실제 연구 결과 1년이 지나면 사랑에 대한 열정은 50% 정도 감소한다고도 밝혔다.           


언뜻 보면 연인 관계는 처음에 뇌의 호르몬 화학작용에 의해 쉽게 시작되고 어느 정도 관계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호르몬에 의해 시작한 감정은 호르몬 감소로 함께 사라지기 때문에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첫사랑을 마지막 사랑으로 이어가고 싶었던 나에게도 시간이 흐르자 거짓말처럼 관계에 위기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정말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서로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마도 핑크 렌즈 효력이 끝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랑의 유효기간인 18개월에서 30개월이라는 시간은 인간이 자손을 번식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슷하다. 자손 번식의 시간이라 함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수유 기간을 포함한다. 이  이는 놀랍게도 사랑의 호르몬이 최대로 나오는 기간과 일치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인간의 사랑은 호르몬의 장난에 놀아난 것이다. 실제 나와 상대방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 유전적으로는 차이가 클수록 성적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파라나대 마리아 다 그라사 비카류 교수는 사람들이 흔히 공통점 때문에 배우자를 선택한다고 착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이끈 파라나대 연구팀에 따르면 전혀 다른 유전인자를 가진 남녀는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남녀에 비해서 결혼하는 비율이 높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이유는 동족 번식을 막고, 남녀 유전자가 다를수록 자손이 질병에 대한 면역력과 저항력이 강화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랑’과 관련된 모든 이론을 종합하여 보면, 사랑 호르몬이 나오지 않게 되면서부터 연인 관계에는 위기가 찾아오고 심지어 이별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주변만 살펴봐도 연애에 이어 결혼을 하고 심지어 죽는 날까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 사랑에 대해서 말했던 학자들도 사랑의 최초 단계는 에로스였지만 점점 성숙한 사랑의 단계로 넘어간다고 했다. 이처럼 처음에는 남녀 간의 에너지 넘치는 사랑이었다면 점점 열정에서 애착의 관계로 넘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시기가 지나면 이런 점을 이해하고 사랑의 방식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내 인생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지금의 아내와 4년간 연애 후 결혼했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 시간에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쏟았던 시기인 것 같다. 특히 사랑 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기간부터는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인간 관계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내 아내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동반자로서 관계 유지하고 있다. 연애 때랑은 다른 느낌이지만 우리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어느 무엇보다 더 최우선으로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           


심리학에는 ‘비어 고글 효과’라는 게 있다. 비어 고글 효과는 술을 마시면 눈에 콩깍지가 씌어 상대방을 더 매력적으로 보는 현상을 말한다. 콩깍지가 씌었다는 영어 표현은 “have the beer goggle on someone”이다. 그리스 시사 풍자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술은 사랑을 싹 틔우는 우유’라고 비유했고, 그리스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도 ‘술이 없는 곳에는 사랑도 없다.’라고 했다. 그만큼 사랑은 술에 취한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근데 술이 깨는 순간에도 상대방을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지가 숙제가 된다. 그래서 연애가 인간관계의 끝판왕쯤 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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