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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Dec 03. 2020

<32> 노력과 끈기는 성공을 키우는 씨앗이다

우리가 만든 점이 모여 선이 되고 모양을 이룬다. 헛된 경험이란 없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앤절라 더크워스는 《그릿》이라는 책을 통해 “성공은 타고난 재능보다 열정과 끈기에 달려있다.”라고 했다. 지능이 아무리 우수해도 중간에 포기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영국의 철학자인 허버트 스펜서가 《Principles of Biology》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말도 결국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위기를 맞는다. 대부분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임계점을 넘지 못하고 포기한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기에 목표에 도달하는 시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근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게다가 실패는 성공의 과정일 뿐인데 기다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성공의 조건이 지속적인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라는 진리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전구를 발명하면서 2천 번의 실패를 경험한 에디슨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2천 번의 단계를 통해 전구를 발명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성공이 오히려 형편없는 선생님이고, 똑똑한 사람들에게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착각을 만든다고 했다. 테슬라의 앨론 머스크도 실패가 없다면 충분히 혁신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많은 혁명을 일으킨 유명한 사람들도 실패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들도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유명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들의 재능과 엄청난 노력을 따라가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더 현실적인 사례를 공유하고 싶다. 주변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며 끈기를 보여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나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교사가 되기까지 나도 4년 동안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임용고시, 사립학교 시험 등 가리지 않고 정규직 자리가 나는 곳이 있을 때마다 수없이 지원했고, 수없이 떨어졌다. 근데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호주에 유학 가서 빌렸던 학비를 갚느라 공부에만 매진할 수 없었다. 노량진에서 몇 년씩 공부만 해도 시험에 붙기 어렵다는데 일하면서 하려니 더욱 상황은 어려웠다. 그렇게 계약직 교사로 계속 근무하며 일과 후에는 도서관에서 시험 준비를 했다. 임용고시를 위한 공부량이 아무래도 부족해서인지 매년 합격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립학교 시험이 유리한 게 아니었다.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 자리도 뚫고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특히 처음에 경력이 적을 때는 더욱 그랬다.      


누군가는 계속 실패를 겪으며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스티브 잡스의 연설 ‘Connecting the Dots’에서 힌트를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은 점과 점이 연결된다. 고로 인생에 쓸모없는 우연은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동그라미를 그리고, 세모를 그리고, 네모를 그리기 위해서는 선이 필요하다. 선은 점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즉, 우리가 무언가를 그리기 위해서 찍은 점은 모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립학교에 지원하고 1차 서류평가에서 수없이 떨어지면서 내 이력이 부족함을 알았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더 노력했다. 이력서를 쓸 때마다 느낀 점은 나는 명문대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교직 경력도 많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온 과거를 바꿀 수 없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며 내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었다.      


대략 3년 차 교사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계약직 교사였지만, 나는 내가 그동안 꿈꾸던 일을 실천하고 싶었다. 경제적이든 아니든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돕고 싶었다. 그때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2년 계약 후에는 다른 학교로 무조건 옮겨야 했다. 그 학교에서 내가 학생들과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 같아서 더욱 간절했다. 매일 점심시간에는 학생들이 어휘를 익히고 문법을 배울 수 있도록 기초 영어 스터디를 진행했다. 방과 후에는 야간에 남아서 무료로 영어 독해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 수준에 맞는 다양한 교재를 개발하는 등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은 최대한 하려고 노력했다.      


임용고시 시험 준비할 시간은 줄었지만,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며 큰 보람을 느꼈다. 사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이때의 경험이 큰 자산으로 남았다. 교육청에서 ‘방과 후 대상’이라는 프로그램 공모전을 하길래 내가 했던 활동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자료를 만들어서 제출했다. 근데 최종 표창 대상자로 선정되어 두 명의 심사관이 현장 실사를 나왔다. 면접 심사를 하며 평가를 하는데 내가 한 활동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주셨다. 그런 칭찬을 바라고 한 활동은 아니었지만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한 활동이 의미가 있다는 걸 느꼈다.      


근데 심사관의 마지막 질문에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학교에 임용된 지 얼마나 되었냐는 질문이었다. 거짓말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나로서는 솔직하게 아직 계약직으로 일하는 교사라고 밝혔다. 그 순간 두 명의 심사관 표정은 굳었고, 말없이 급히 심사를 끝냈다. 물론 그 후 표창 관련된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표창을 받지 못한 건 크게 아쉽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아직 계약직이라는 신분에 대한 냉담한 반응이 조금 그랬다. 한 마디로 씁쓸했다.      


정규직 교사든, 계약직 교사든 나는 같은 교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규직인데 학생을 위한 교사가 아닌 다른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교사라면 계약직 교사보다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사회라는 곳이 그렇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다. 처우도 처우지만 교사로서 전문성을 기르고, 학생들을 위한 더 나은 교사가 되려고 할 때 자격 제한에 걸릴 때가 많다. 지금은 계약직 교사도 정교사 1급 자격을 얻을 수 있지만, 그때는 정규직 교사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사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계속 정규직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첫째는 교사로서 자격에 대한 제한을 받고 싶지 않았다. 둘째는 매년 겨울이면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상 불안한 상태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물론 그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것도 있지만 항상 ‘불안’의 상태가 지속되어 나도 언젠간 지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두 가지 이유만 아니면 그냥 계약직 교사로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교사가 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규직 교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지나쳐온 과정이 모두 쓸모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필기시험을 볼 때 나는 유독 논술 시험에 강했다. 영어로 쓰든 우리말로 쓰든 호주에서 매일 책을 읽고 자료를 조사하며 근거를 바탕으로 내 생각을 쓰는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때 만들었던 점들이 모여서 사립학교 논술 시험을 볼 때마다 합격 통지를 받았다. 수업 시연은 매일 수업을 했기에 부담이 덜 했다. 면접의 경우에도 학생들을 위해 했던 다양한 활동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며 좋게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노력 끝에 7전 8기까지는 아니었지만 4년 만에 정규직 교사가 될 수 있었다. 만일 내가 단순히 임용 시험을 더 중요시하고 교사로서의 생활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기시험에는 통과할 수 있었더라도 수업 시연이나 면접과 같은 실기 시험에서는 또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내가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의 자세를 가졌기에 수많은 점이 모여 ‘교사’라는 모양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라 믿는다.      


그 모양을 그리는 타이밍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을 많이 하거나,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근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운이 따르는 시기도 있다. 근데 꾸준히 준비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기에 우리는 계속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끈기 있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1993년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후에도 10년간 출판사들로부터 퇴짜만 맞았던 작가가 있다. 첫 출세작인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 나오기 전까지 14년 7개월간 무명으로 보냈던 긴 세월은 혹독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꿈꾸는 다락방》, 《리딩으로 리드하라》 등의 베스트셀러 작품을 남긴 이지성 작가다. 그는 “내가 꿈을 배반하지 않으면 꿈도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라는 믿음으로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버텼다고 했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전전하며 21년 무명생활을 겪은 배우도 있다. 데뷔 13년 만인 2003년에 《바람난 가족》에 출연하며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고, 2005년 영화 《너는 내 운명》으로 청룡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현재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성공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충무로의 흥행 보증 수표로 통하는 배우 황정민의 이야기다. 그 밖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서 꾸준히 노력하고 꿈을 향해 끈기 있게 버티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결국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있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도 내 주변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꼭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모습을 보였다. 요새 말로 ‘존버(끝까지 버티기)’하면 우리는 꿈을 이룰 수 있다. 하루에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 빼고는 종일 책상에 앉아서 공부했던 한 친구는 4수 만에 경찰공무원에 합격했다. 지인 중에는 항공 승무원이 되기 위해 수년간 노력해서 꿈을 이루기도 했다. 그 지인의 남자 친구가 “네가 승무원이 될 거라고?”라며 비웃었을 때도 참아가며 끝까지 꿈을 이루고자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멘토가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시를 쓰며 문학 작품에 관심이 많았고, 아이들과 꿈을 나누는 국어교사가 되려고 했다. 대학입시 때는 국어교육학과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점수에 맞춰서 학교에 지원하다 보니 그럴 수 없었다. 대신 국어국문과를 복수전공으로 하고 교육대학원에 가서 교사 자격을 얻었다. 졸업 후에는 계속 임용고시에 도전했는데 항상 점수가 조금씩 모자랐다. 내가 보기엔 충분한 실력도 갖추었고, 교사로서의 인성과 자질도 충분한 멋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운이 따르지 않는 것 같았다.     


계속 공부만 하던 그는 생계가 걸리자 계약직 교사로 근무하고, 진로교육원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사가 되겠다는 그의 열정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힘들었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계속 도전했다. 실제 임용이 되던 해에는 근무하던 곳에서 야근이 많아서 시험공부를 많이 할 수 없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그해에 그는 드디어 임용됐다. 매번 아까운 점수 차이로 아홉 번이나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지만, 결국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라는 말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그는 사실 내가 많이 사랑하는 친척 형이다. 친형이 없지만, 친형 같은 존재다. 그의 도전이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고모인 우리 어머니께서는 내가 교사로 임용되었을 때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그 형을 걱정하는 말을 하셨다. 심지어 형이 교사로 임용되었을 때는 펑펑 울면서 더 많이 기뻐하실 정도였다. 근데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나도 어릴 때부터 우상처럼 생각해오던 멘토인 형이 너무 안 풀려도 계속 안 풀려서 항상 가슴 한편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어머니 마음과 같다. 형의 임용 소식에 가슴이 부풀어 오를 정도로 진한 울림이 있었다. 많이 힘들었을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2년 전 나는 처음으로 작가를 꿈꿨다. 실제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썼다. 근데 책도 거의 안 읽던 사람이 쓴 글이라 책으로 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작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책을 읽기 시작했고, 형식에 맞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독서와 책 쓰기 관련 책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계속 키웠다. 중국 송나라 정치가 겸 문인 구양수(歐陽脩)는 글쓰기의 핵심은 삼다(三多) 즉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는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고 실천하고자 했다. 그래서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이 책의 80%에 해당하는 글을 쓰고 있으니 책으로 나온다면 작가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듯 꿈을 포기하지 않고 부족한 점을 채우려 노력하고, 끈기를 가지고 끝까지 나아간다면 결국 이루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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