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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걸 May 10. 2016

부록

공허하다

개천에서 용은 난다. 그 용을 낳는 건 용 뿐이다.


용이 종이 다른 지렁이를 낳을리가 없고 지렁이가 감히 용을 낳을라도 없다.


나의 아비는 지렁이였다. 내가 태어난 곳은 개천이었고 나는 지렁이로 살아왔다. 용이 낳은 용도 간혹 개천에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잘되면 개천에서 용났다고들 한다. 원래 용이었던 것을 용이다! 라며 환호성을 친다.


내 또래 남자애들은 온통 집 이야기 뿐이다. 부동산, 집에 오늘을 근저당 잡힌 채 대출이 끝날 십수년 뒤의 행복을 자린고비의 굴비처럼 허공에 매달아놓고 바라만본다. 정작 오늘 저녁 집의 식탁에는 행복이 없다.


그러니까 내 말은 마음이 너무 아프다. 지렁이들이 용을 보며 나도 용이다, 나도 쟤 따라 승천할거야 라며 개천 바닥에서 촌충같은 몸을 꿈틀거린다.


지렁이는 지렁이의 꿈이 있을 것인데, 너무나 많은 방향으로 열린 행복의 문이 있을 것인데, 그저 인생을 오직 하나의 목적, <용이 되겠어>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산다.


요즘은 즐겁게 대화할 사람이 없다. 만나면 집 이야기만 하고 이 대출을 갚고나면 또 대출을 더 받아 더 비싼 아파트로 가겠다는 장기 30년 계획 대출의 꿈만 있을 뿐이다. 간혹 내가 니 행복을 찾으렴 이야기를 하면 왠지모르게 초 치는 사람만 되는 것 같다.


즐겁게 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유에 대해 교감할 사람이 없다. 들었을 때 공감가는 고민이 없고 진심으로 조언해 줄 고민이 없다. 나는 몹시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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