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절친은 영주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온 아이였다. 그녀가 언니들과 서울에 자취를 한 덕분에 우리들은 자주 그곳을 아지트 삼아 놀고는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 21살, 아니 20대 내내 그 낡은 구들방 같은 집에서 베개와 이불로 폭신한 요새를 이루고 쓸모없고 잡다한 이야기를 천장까지 가득 쌓았다.
중요하지도 않은 얘기였다. 우릴 제외한 남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정작 우리의 삶은 왜 이렇게 힘들고 불행해보이는가..라는 세상에 대한 타박이 많았다.
그녀와 나는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둘다 미술을 했으며, 절대 주류에 편승하기 어려운 취향을 가졌으며 성격까지 조금 독특했다. 현실이 보잘 것 없을 지 몰라도 이상은 커서 남들과 다른 만큼 더 멋지고 재미있는 미래를 꿈꿨다. 다만 우리가 가지지 못한 평범한(?) 삶을 사는 친구들이 조금은 부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장 화제에 올랐던 아이는 내 친구 A였다.
A는 정말 평범한 아이였다. 평범하게 생긴 아이는 무탈하게 학교 생활을 했고 평범한 학생의 본분인 공부도 열심히 했으며 또 잘했다. 다만 교대에 가라는 부모의 강권에 재수를 했으나, 그래도 목표했던 서울교육대학교에 갔다. 그 이후부터 그녀의 인생은 고민할 필요 없이 정해져 있어 보였다. 어찌나 이상적인 삶인가.
어이없게도 우리는 그녀를 '평범'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이 평범함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특히나 우리 나이 또래가 많이들 꿈꾸던 '이상'이었다. 교대 경쟁률은 최고치였고, 전국에서 임용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고시원을 장악하고 있었을 때니까.
'이상'이지만 너무 평범해. 나는 모두가 사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아. 그렇게 자위했던 것 같다.
나의 결혼
20대 때는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의심을 많이도 했다. 사주를 보면 남자운이 없다고 했고 만나도 한량을 만나니 남자에 큰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신점을 보면 남자를 많이도 만나 배다른 자식을 여럿 키울 운세라고도 했다.
대단하다. 정말로 독특한 삶이다. 흡족했다. 그래서 기대를 버렸는지 모르지만 이런 일화를 주변에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다닐 정도로 결혼이란 나와 멀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서 당연히 결혼한다는 것도 너무 편견이니까.
하지만 운이 나빴는지 비혼의 의지를 약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했고 눈을 떠보니 결혼을 했다. 삼십 평생을 그리 피해오고 싶었던 보편적인 인생루트를 따르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자존심이 조금 상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결혼 7개월 즈음, 나는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된 장염을 달고 살고 있었다. 저러다 길가다가 쓰러지지 않을까 나 스스로도 걱정이 될 몸상태였다. 말 그대로 누렇게 뜬 환자 같은 몰골이 돼서야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7년 직장인 생활에 'GG'를 날리고 말았다.
왜 난임 병원에 갔냐고? 솔직히 말하면 심심함을 떨치지 못해서 할일을 찾다가 아이를 찾게 됐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당연히 좀이 쑤셨다. 괜히 신랑의 눈치도 보였다. 이제 결혼해서 열심히 돈 모아야 하는 상황인데 내가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거울에 혈색 없이 노랗게 황달이 뜬 얼굴을 보자니 어디에 이력서 원서를 넣는 것도 목숨을 갉아먹는 짓 같았다.
이렇게 된 거, 임신이나 해봐?
마음 놓고 쉬게.
이왕 쉬는 거 임신해서 합법적(?)으로 쉬면 어떨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가당치도 않은 농담이지만, 그때부터 가족계획을 기 시작했다. 삼십 넘게 인생에 아이가 있다면 조카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물론 조카도 없었다.)내 인생에 처음 아이라는 키워드가 자리잡게 됐다.
거듭 말하지만 평소 아이를 예뻐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직장인으로 야망이 많았고, 항상 특이한 결정을 내리면서 살아왔는데 이런 내가 임신을 한다니.
남편은 나와 다르게 심각할 정도로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라도 주변에 지나갈라치면 윙크를 하거나 말을 거는 등 몸을 가만히 두질 못한다. 이런 사람과 결혼을 했으니 분명 언젠가는 아이에 대한 주제가 나온다.
나도 마냥 젊은 건 아니니까. 언젠가는 임신을 할 거니까. 그래, 쉴 때 '평범하게' 임신을 하자. 마치 수 십 번도 본 것 같은 일일 드라마의 장면처럼 말이야.
여주인공이 무심코 임신테스트기를 건드려 보다가 깜짝 놀라는 그런 패턴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올랐다.
성격이 급한 탓에 배란테스트기를 잡고 이제나 저제나 하기도 귀찮다. 산전 검사도 안 해봤으니 병원이나 가보자. 어디 한번 나도 평범하게 살아보는 재미를 느껴보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