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8)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


리클라이너 소파에 사람 하나가 누워있었다. 너무나 편한 자세로 누워 있어서 깊이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곤색 우주복을 입고 샛노란색 헬멧을 쓰고 있었다. 전형적인 우주 작업자 복장이다. 직사광선으로 인한 실명에 대비해 짙게 선팅된 헬멧 고글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죽은 건 아니겠죠?”


“그럴리가요. 자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애나, 여기 사람 있어. 확인해 줘.”


하연이 애나를 불렀다.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통신이 안 되나? 애나, 애나?”


“처음부터 제대로 되는 게 있었나요. 이젠 놀랍지도 않아요. 미리내 정거장이라고 했나요? 여기는 폐기가 답인 것 같아요.”


하연은 아무 대답하지 않았지만 침묵은 곧 긍정이다.


“일단 데려갈까요?”


두 사람은 인부의 양팔에 팔짱을 끼고 일으켜 세웠다. 무겁지 않았다. 이래서 하역장 중력을 낮추나 보다.


대합실로 돌아오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 번 지나온 길이라고 특징없는 복도가 익숙했고,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대합실로 돌아오자마자 하연과 리히터는 헬멧을 벗었다. 이름 모를 인부는 대합실까지 침범한 철제 상자 옆에 눕혔다.


“애나, 애나.”


얼굴 한가운데 점을 찍은 애나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우아하게 고개를 들었다.


“다녀오셨어요? 먹을 건 찾았나요?”


하연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쑥 넣어 전리품을 꺼내 심사대에 올렸다. 발포커피 스틱 세 개와 초콜릿 바 다섯 개. 리히터는 다음 것을 기다렸지만 하연의 손은 멈췄다.


“이게 전부에요?”


리히터는 수상쩍은 표정을 지었다. 하연은 우주복 곳곳에 달린 주머니를 팡팡 두드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실망 말아요. 이만하면 화물선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어요. 아껴 먹으면요.”


하연은 디바이스 화면을 건드렸다.


“이제…, 14시간 42분 남았네요.”


하연은 리히터와 자기 앞에 발포커피 스틱 하나와 초콜릿 바 두 개를 밀었다. 발포커피 스틱 하나와 초콜릿 바 하나가 애나 앞에 남았다.


“이건 정말 정말 정말 배고플 때 ‘나눠먹기’로 해요. 애나가 가지고 있다가 허락없이 누가 가져가려고 하면 알려줘.”


리히터는 초콜릿 바 포장을 뜯으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하연도 초콜릿 바 포장을 뜯어 입에 넣었다.


“커피는 어떻게 마셔요? 물도 없는데.”


리히터는 무심결에 발포커피 스틱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어, 어. 그렇게 흔들면…”


하연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커피 스틱이 부풀어 올랐다. 리히터는 깜짝 놀라 커피 스틱을 떨어뜨렸다. 납작했던 커피 스틱이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를 내며 빵빵해졌다. 30초 정도 지나자 소리가 멎었다. 하연은 커피 스틱을 주워 리히터에게 건넸다.


“윗부분을 뜯어서 쭉 빨아마시세요.”


리히터는 축 늘어진 커피 스틱을 받아들었다.


겉 포장지에 COFFEE라고 쓰여 있었지만, 내용물을 직접 보지 못한 리히터는 몹시 불안했다. 루나시티 음식 중에선 이름만 같고 맛이 다른 음식이 가끔 있었다. 리히터는 주저했지만 하연의 기대하는 눈빛에 일단 알려준 대로 흡입구를 뜯었다.


벌어진 틈에 입술을 붙이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주 조금만 마실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많은 양의 액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리히터는 섣불리 맛을 느끼지 않으려고 했지만, 액체는 이미 미뢰 사이사이에 스몄다. 후회를 곱씹을 틈도 없이 리히터는 눈을 번쩍 떴다. 수십 시간 만에 맛보는 달콤함이었다. 비슷한 맛을 꼽는다면 한국식 믹스커피와 비슷했다. 리히터는 갓난아기처럼 커피 스틱을 쭉쭉 빨아마셨다. 하연은 생기 넘치는 리히터에 미소 지으며 발포커피 스틱을 흔들었다.


하연과 리히터는 순식간에 일용할 양식을 해치우고, 각자 벤치 가장 끝자리에 붙어 앉았다. 침묵이 남은 자리를 채웠다. 두 사람은 문득 논쟁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허기도 가셨겠다. 시간도 남았겠다. 끝장을 봐야할 차례다.


“그래서 저희 요구 사항은 못 들어준다는 말씀이죠?”


리히터가 먼저 운을 띄웠다.


“당연한 말씀을 굳이 하시네요. 배 꺼지게요.”


“루나시티도 그다지 손해는 아닐 겁니다. 그토록 바라던 자원 독점권과 실험 통제권을 얻었잖아요.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는 게 뭐 무섭다고 그럽니까.”


“잠깐 손가락질 받은 거라면 모르죠. 하지만 현재는 물론이고 후세에도 비난을 받겠죠. 그뿐이겠어요? 루나시티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겠죠. 영원히요.”


“미래는 생각하지 마세요. 인간은 현재를 살아요. 받아들여요. 그렇게 염원하던 권리를 손에 얻을 수 있어요. 단 한 마디로요. 좋지 않나요?”


“지구는 다시 달을 발밑에 둘 거고, 달은 인정하지 못하고 발버둥 칠 거예요. 달과 지구는 영원히 싸우겠죠.”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네요.”


초콜릿 바 하나로 리히터는 완전히 활기를 되찾았다.


하연은 잠시 멈추었다. 이래서는 기껏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할 뿐이다. 하연은 방향을 조금 틀었다.


“차관님.”


“뭐죠?”


“저 말이죠. 이해되지 않는 게 있어요.”


“이해 못할 게 있나요? 루나시티가 원하는 걸 지구가 내어준다. 그 대신 지구의 요구를 루나시티가 들어준다. 간단하지 않나요?”


“차관님, 저희 목적이 뭐예요? 달과 지구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요?”


“그렇죠.”


“그럼 루나시티와 지구가 척을 지면 지구도 좋을 게 없잖아요. 기껏 지구에 쌓였던 문제들을 루나시티 설립으로 해결했는데, 그 방법을 버리겠다는 거잖아요. 이산화탄소 배출이나 쓰레기 소각도 루나시티 협조가 없으면 우주로 올릴 수 없죠. 좋으나 싫으나 루나시티와 지구는 발을 맞춰야 해요. 그런데 왜 자꾸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려고 하죠? 마치 달을 대체할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요.”


리히터는 입을 다물었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일변했다. 초콜릿과 커피가 채운 에너지가 순식간에 말라버렸고 꺼림칙함만이 남았다.


“화성 테라포밍이 완료되었군요?”


“갑, 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지구연합은 숨기고 싶었겠지만 우주에서는 한 번 비춘 빛은 어디까지고 뻗어나가요.”


“루나리안은 우기기 선수입니까? 증거도 없잖아요.”


“지구는 항상 그랬어요. 자기네들에게 필요 없으면 말을 안 들으면 내다 버렸죠.”


“그렇지 않아요. 지구는 달의 영원한 친구예요.”


“그래서 달과 척을 져도 상관없었던 거군요…. 더럽네요.”


리히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서기관님. 말씀 가려서 하세요. 전부 기록되고 있어요.”


하연이 리히터를 올려보았다. 하연의 눈은 무척이나 슬퍼보였다. 리히터는 끝까지 하연을 바라볼 수 없었다.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만 저 분은 누구신가요?”


차분한 목소리가 하연과 리히터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하연과 리히터는 애나를 바라보았다. 애나는 얼굴에 화살표를 띄웠고, 두 사람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철제 상자 옆에 눕혀 놓았던 이름 모를 인부가 일어서 있었다.


“아까 휴게실에 있었던 사람이야. 애나. 정거장에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


애나는 화살표를 지우고 물음표를 얼굴에 띄웠다.


“없어요.”


저길 봐, 있잖아. 리히터는 그리 말하듯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인부를 가리켰다.


“출입 기록 확인과 열 감지 추적까지 했는걸요?”


“그러면 저 사람은 뭐야?”


애나는 얼굴에 물음표의 수를 늘렸다.


인부가 발을 끌며 하연과 리히터에게 다가왔다. 하연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저, 선생님? 멈춰주시겠어요?”


하연의 정중한 부탁에도 인부는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 소속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나가려면 기다려야 해요. 열 시간은 더 있어야 해요.”


“선생님, 헬멧을 벗어주시겠어요?”


인부는 무시하고 리히터에게 다가왔다.


“헬멧 때문에 안 들리나 봐요.”


“그럴리가요. 이정도 거리면 지향 전파로 들려요.”


“저기요. 저기요!”


리히터가 머리 위로 손을 퍼덕였다.


“차관님, 서기관님. 저 사람 체온이 말도 안 되게 낮아요.”


애나 얼굴에 초록색 점선이 파문처럼 퍼졌다.


“몇 도야?”


“2.9도 입니다.”


어느새 인부와의 거리는 다섯 걸음도 남지 않았다. 하연과 리히터는 벤치 뒤로 움직였다.


하연은 바라지 않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느린 걸음걸이. 의사소통 단절. 관계 협의장에서 본 감염자들과 닮았다.


하연은 리히터를 바라보았다. 리히터는 입술을 앙 다물었고 턱이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 하연이 깨달은 사실을 리히터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다행인 건 감염자는 한 명이고 이쪽은 두 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손, 발을 묶을 수 있을 만한 걸 가져올게요. 시선을 끌어줘요. 만약 저한테 시선이 끌리면 차관님이 저기 있는 고무벨트를 가져오세요. 화물이 풀어져도 상관없어요.”


리히터는 시선을 인부에게 고정시킨 채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리히터가 팔을 과장되게 휘저었다. 짙은 선팅 때문에 리히터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하연은 일단 움직였다. 인부는 느릿느릿 움직였고 다행히 인부의 다리는 리히터를 향했다. 하연은 철제 상자를 향해 달렸다.


리히터가 인부를 넘어뜨리고 팔을 잡은 사이, 하연은 고무벨트로 인부의 손과 다리를 묶었다. 인부는 앞뒤로 몸을 흔들었다. 리히터가 인부를 온힘을 다해 붙잡았다.


“고무벨트 하나 더 가져와요!”


하연은 하역장에서 고무벨트를 하나 더 가져왔고, 인부를 벤치 다리에 묶었다.


인부는 몸을 들썩였고, 하연과 리히터는 숨을 돌렸다. 기껏 채운 에너지가 바닥을 보였다.


“차관님, 상태를 봐야겠죠?”


리히터는 싫었지만 눈을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눈을 감는다고 해서 눈앞에서 버둥대는 남자가 사라지지 않는다. 리히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리히터가 인부의 어깨를 잡았고, 하연은 인부의 헬멧 밑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벨크로를 뜯고 지퍼를 열었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제발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하연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헬멧을 젖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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