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시티> 연작소설
하연과 리히터는 어느 쪽에게 더 잘못이 있는지 루나시티의 설립 넘어 스노그가 달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하나하나 따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피곤해서 어쩔 줄 몰라했었는데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잠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허점을 보이면 개인이 절대 질 수 없는 책임을 감당해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나는 빈 얼굴에 점을 찍고 절전 모드로 전환했다.
매분 매초 하연과 리히터는 서로가 평행선 위에 있다는 것을 누차 확인할 뿐이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원초적인 본능에 굴복했다.
“잠깐만 쉽시다.”
하연은 손을 대충 휘저었다. 배고파서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애나, 혹시 먹을 거 없을까?”
애나의 얼굴 한가운데 찍힌 초록점이 고무줄을 잡아당긴 듯 가로로 팽팽하게 늘어지더니 리드미컬하게 한 점에 모였다. 점은 바닥에 떨어뜨린 유리공처럼 산산조각 나 애나의 눈, 코, 입으로 재조립했다.
“정거장 내 별도로 저장한 식량은 없어요.”
기내식이 남아있기를 기대했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인부들이 이용하는 식당이나 카페테리아는 없을까?”
하연은 죽어가는 목소리를 내었다. 배에선 뭐라도 좋으니 먹을 것을 넣어달라고 아우성쳤다. 초록색 점선이 애나의 얼굴을 가로질렀다.
“미리내 정거장엔 식당이 없어요.”
미리내 정거장은 정말 여객항은 포기했구나. 하연은 한숨을 쉬었다.
“매점도? 인부들만 쓰는 것도 좋아.”
여전히 초록색 점선이 애나의 얼굴을 가로질렀다.
“인부들이 휴게실로 비워둔 공간이 있어요.”
“어디?”
리히터가 끼어들었다. 애나는 초록색 점선을 더듬듯 느릿느릿 말했다.
“하역장을 가로질러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문으로 들어가요. 복도를 따라 쭉 들어가면 양쪽에 문이 보여요. 양쪽을 전부 포함해 세 번째 위치한 방이 인부들이 휴게실로 이용하는 공간이에요.”
“휴게실에 아무도 없어?”
초록색 점선이 애나의 얼굴을 가로질렀다.
“열 감지 결과. 현재 미리내 정거장에 두 분을 제외한 인간 정상 체온 범위에 있는 존재는 없어요.”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역장 가로질러서 맨 오른쪽 문. 복도 쭉. 세 번째 문.”
“양쪽 상관없이 세 번째 문이에요.”
“양쪽 상관없이.”
하연은 손가락으로 양쪽을 가리키며 아주 짧은 경로를 외웠다.
“맞아요.”
애나는 경쾌하게 인공 합성음을 내었다.
하연은 주린 배를 안고 휴게실로 가기로 했다. 여기에 있어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뿐이다. 무언가 손에 넣을 기회가 있다면 움직이는 편이 낫다.
하연은 우주복을 점검했다. 벨크로가 제대로 붙어있는지 지퍼는 전부 잘 잠겨있는지 확인하고 목뒤에 수납한 헬멧을 잡아 당겼다. 옆에서 리히터가 손목 벨크로를 뜯었다가 다시 단단히 조였다. 허리를 숙여 발목 지퍼도 빈틈없이 채웠다.
“따라오시게요?”
리히터가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났다.
“가면 안 됩니까?”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무중력 힘드시잖아요.”
“같이 갑시다.”
“왜요?”
리히터는 입술을 살짝 벌렸다가 입을 다물었다. 당신을 못 믿겠다. 무심코 대답할 뻔했다.
“쉬세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하연은 검지를 빼들고 리히터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그대신 서명만 하세요. 자원 독점권, 실험 통제권을 루나시티에 넘기겠다고요. 저 먼저 서명하라고 하지 마세요. 그건 절대 못해주니까.”
리히터는 코끝을 찡그리며 눈썹을 들어올렸다.
“한 가지 유의하셔야 해요. 하역장 구역에서는 헬멧을 꼭 쓰셔야 해요. 그리고 하역장 중력이 0.55로 낮아져요.”
애나가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어 당부를 전했다.
리히터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었다. 안주머니에서 파란 알약 두 알을 꺼내 입에 넣었다.
“겁먹지 마세요. 멀지 않으니까요.”
어린아이 타이르듯 말하는 하연을 보며 리히터는 대답 대신 파란 알약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었다. 무중력 따위에 질 수 없다는 의지였고, 그것은 루나시티에 질 수 없다는 확고한 의사 표명이었다.
하연은 헬멧을 뒤집어썼다. 머리부터 발목까지 꼼꼼하게 우주복을 점검하며 움직일 준비를 했다. 리히터도 부랴부랴 헬멧을 썼다. 하연을 곁눈질하며 이음새를 조였는데 답답하다고 마구잡이로 풀어헤친 탓에 미리내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보다 어딘가 어설펐다. 먼저 준비를 마친 하연은 리히터를 아래 위로 훑어보고는 리히터의 목에 손을 가져갔다. 당황한 리히터는 하연의 손길을 피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하연의 손이 헬멧과 목깃 사이로 파고 들었다. 하연은 지퍼를 잠그고 벨크로를 닫았다. 이래야 우주복 내부와 외부 기압이 어긋나지 않는다. 하연은 리히터를 두고 한 바퀴 돌며 우주복을 점검했다. 리히터는 마네킹처럼 꼿꼿이 서서 하연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우주에서는 서로 도와야 한다.
하역장은 철제 상자가 높다랗게 쌓여 있어 어디를 둘러봐도 똑같은 풍경이었다.
“애나, 방향 맞아?”
하연은 애나를 불렀다. 하연과 리히터는 대합실을 나서기 전, 애나와 통신 주파수를 맞추었다.
“맞아요. 지금 멈춘 자리에서 시선을 오른쪽을 76도 돌리세요. 문이 보이시죠? 그 문을 열면 나오는 복도를 쭉 따라가세요. 복도 끝에 문이 하나 더 있어요.”
“거기서 양쪽 방향 없이 세 번째 방이 휴게실.”
“맞아요.”
경쾌한 인공 합성음이 들렸다. 하연은 느낌표를 띄운 애나의 얼굴을 상상했다.
하연은 땅을 디딘 발을 쭉 내뻗었다. 몸이 가볍게 튀어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리히터도 곧잘 따라했다. 멀미약을 먹어서 그리 힘들어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문을 열었다. 깜깜했다. 하역장에서 들어오는 빛이 없었더라면 하연은 복도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연은 호흡을 가다듬고 발을 뻗었다. 머리 위에 센서등이 불을 밝혔다. 다행이었다. 하연은 리히터가 잘 따라오는지 살피고 다리를 쭉 내뻗었다. 두 번째 문은 꽤나 깊숙이 있었다. 방과 방 사이의 거리도 꽤 멀어서 미리내 정거장이 아닌 다른 장소와 연결된 게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리히터는 맞게 나아가고 있는지 다섯 걸음마다 애나를 불렀고, 애나는 귀찮은 기색 없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마침내 하연과 리히터는 휴게실에 도착했다. 헷갈릴 게 없었는데 다른 방과 달리 문이 없었고, ‘휴게실’ 명패가 벽에 붙어 있었다.
“제가 안쪽 살펴볼게요.”
리히터가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을 헤칠 때마다 전등이 켜졌다.
하연은 출입문에서 바로 보이는 캐비닛을 열었다. 예비 우주복이 세 벌이 걸려 있었다. 미리내 정거장에서 일하는 인부가 몇 명인데 세 벌밖에 없어? 하연은 다른 캐비닛도 열었지만 비어 있었다. 하연은 우주복을 살폈다. 소매가 닳은 걸로 봐선 누군가 입었었나 보다. 미리내 정거장에 대한 지원이 미흡하거나. 탈출 포트도 제때 채워지지 않은 걸로 봐선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연은 루나시티로 돌아가면 우주 정거장 점검을 꼼꼼하게 하자고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재난을 겪은 덕분에 미흡한 부분을 알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연은 캐비닛을 닫았다.
캐비닛 옆에는 반으로 자른 철제 상자가 뒤집혀 있었는데, 스낵 박스와 비닐 봉지 잔해가 흐트러져 있었다. 하연은 남은 스낵을 챙겼다. 발포(發泡)커피 스틱 세 개와 초콜릿 바 다섯 개가 전부였다. 이것 말고도 플라스틱 통이 여러 개 있었지만 비어있었다. 아쉬웠지만 하연은 이해했다. 인부들은 항상 배고파서, 청소기처럼 내놓은 만큼 전부 먹어치운다. 이거라도 남아 있는 게 다행이었다. 하연은 전리품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휴게실 안쪽을 맡았던 리히터가 돌아왔다.
“저쪽엔 뭐 없네요. 여기는요. 아무것도 없어요?”
하연은 실망 섞인 표정을 지었다.
“장난치지 말아요. 먹는 걸로 치사하게. 아까 들어가면서 있는 거 봤어요.”
리히터는 빈 간식통에 손을 집어넣고 거침없이 휘저었다. 리히터가 움직이는 대로 간식 통이 볼품없이 흔들렸다. 간식 통을 뒤지는 모습이 빈 그릇을 싹싹 핥는 늙은 닥스훈트 같아 우스웠지만 그런 하연을 나무라듯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하연만 들을 수 있었지만 리히터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얼마 없는 거 다 챙겼어요. 어차피 여기서는 못 먹잖아요. 돌아가서 나눠요.”
“정말이죠?”
하연은 불룩한 바지 주머니를 팡팡 두드렸다. 리히터는 간식 통에서 손을 뺐다.
“돌아가요. 배도 고프고 으스스한데.”
하연이 휴게실을 나선 참이었다.
“아!”
리히터가 잊어버린 것을 떠올린 것처럼 소리를 냈다. 헬멧에 맴도는 단말마에 하연은 어깨를 움츠렸다.
“깜짝이야. 뭐예요. 갑자기.”
“소파에 사람이 앉아 있었어요.”
“거짓말 말아요. 제가 장난 좀 쳤다고 복수하는 거예요? 화물선 도착하려면 열 시간은 더 있어야 해요.”
리히터는 장난기 쏙 뺀 얼굴로 하연을 바라보았다. 거짓말하는 낌새는 아니었다.
“잘못 봤겠죠. 애나가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애나가 틀렸을 수도 있죠. 만약 살아있다면 어디 크게 아픈 게 분명해요. 툭 건드려봤는데 반응이 없었어요.”
그래서요? 하연은 답이 정해진 질문을 묻고 싶었다. 하연은 한시라도 빨리 대합실로 돌아가 끔찍한 허기에서 자신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우주에서 사람 목숨보다 중한 것은 없다. 우주에선 서로 도와야 한다.
“어디 있어요?”
리히터가 앞장 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