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시티> 연작소설
“차관님! 루나시티가 전 인류를 향해 테러 행위를 했다는 겁니까?”
“진정하세요.”
리히터는 나뭇가지같이 메마른 손가락을 바닥을 향해 나풀거렸다.
“이래서 자원 독점권과 실험 통제권을 쉽게 넘겼군요?”
리히터는 입을 다물었다. 침묵은 동의와 같다.
“이래서 땅거북들은……”
리히터는 이때다 싶어 벌떡 일어났다.
“지금 땅거북이라 하셨습니까? 혐오 표현이란 건 아시죠? 외교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서기관님, 발언에 책임을 지실 수 있으시죠?”
“제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러시는 거죠?”
리히터는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는 애나에게 다가갔다.
“애나, 애나. 너도 똑똑히 들었지?”
애나 얼굴 한가운데 찍혀있던 작은 초록점이 둘로 찢어져 큼지막한 눈을 만들었다.
“안전을 위해 대합실 24시간 모든 영상 및 음성 기록해요.”
리히터는 의기양양하게 하연을 바라보았다. 하연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심사대로 다가왔다. 리히터는 엉거주춤하게 하연 앞을 가로막았다.
“애나, 난 기록하라고 동의한 적 없어. 초상권 침해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십 분 전까지 기록은 모조리 지워. 영상이든 음성이든 문자든 전부!”
“애나, 이 사람 말 들을 필요 없어. 내가 이 사람보다 직책이 높아. 확인했지?”
어이없어 하는 하연 앞에서 리히터는 이죽거리듯 입술을 구부렸다.
“정말 유치해. 이런 사람이 지구연합 대표라니 말도 안 돼. 라리슨 장관이 백 배 천 배 낫겠어.”
“상대를 무시하는 언행도 외교 문제를 빚을 수 있습니다.”
“차관님은요. 전염병의 원인이 루나시티에 있다고 인정하라고 협박하셨잖아요.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협박이라뇨. 부탁이자 제안이죠. 합의의 시작이고요.”
“극악무도한 발상을 대체 누가 떠올렸죠? 이거야말로 공개 되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거예요.”
“국가 간 관계 협의를 누가 공개합니까. 설마 유출할 생각입니까?”
“어디 한번 다 까보죠. 테이블에 앉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누가 더 잘못했는지 모두 알아야 해요. 이건 지구니 달이니 상관없이 인간적으로요!”
하연과 리히터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제대로 된 협의를 할 생각은 없고 받기만 하려고 하는 루나시티야말로 지탄받을 겁니다.”
“받기만 하다뇨?”
“처음부터 따져봅시다. 루나시티에 있는 인프라는 땅에서 솟아났답니까? 루나시티는 애초에 지구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입니다. 우리가 달을 점찍지 않았으면 루나시티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화성을 제2의 모성으로 정했으면 루나시티가 존재했겠습니까? 젊은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일은 당연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지구가 루나시티의 엄마고 아빠겠죠. 하지만 자식이 성장했으면 독립할 수 있도록 보내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죠. 루나시티가 설립하고 몇 년 되었는지는 아시죠?”
리히터는 얼른 속으로 양손가락을 번갈아 접었다 폈다. 리히터는 본인보다 몇 살 어리다는 것만 알지 정확한 연수는 몰랐다. 하연은 콧방귀를 대차게 뀌었다.
“우주방위부 차관님이, 그것도 관계 협의를 나선 분이 아주 기초적인 지식도 없으시네요. 루나시티에 대해 기본 상식이 없으니 관계 협의가 잘 되겠어요? 자원 독점권이나 실험 통제권을 툭 던져주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어처구니 없는 조항에 서명할 거라고 생각했겠죠. 수가 얄팍해요. 뻔하다고요.”
“루나시티가 설립하고 몇 년이 지났는지가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하죠!”
하연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리히터의 언행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이래서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달에 사는 사람들을 모른다는 거예요. 달은 지구에게 모든 것을 내어줘야만 하는 저장창고로만 생각하죠. 달에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잔뜩 분노로 채운 하연은 금세 풀이 죽어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리히터는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감정을 숨겼다. 라리슨 장관의 세 번째 협상 기술. 외교에 감정적인 대응은 금물이다. 감정의 동요는 야생 동물이 눈앞의 적에게 배를 뒤집어 까는 행동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리히터는 유리한 판정 하나를 가져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리히터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하연의 말대로 지구 대표가 루나시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한 건 무례한 일이었다. 한편으론 설립하고 몇 년이 지났는지가 지구와 달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필요한 지식이냐 되묻고 싶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하연의 얼굴을 보면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차관님.”
하연은 목을 가다듬었다.
“우리는요.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해요. 눈높이를 맞추길 원할 뿐이에요. 루나시티 설립하고 몇 년이 지났는지가 중요하냐고 물었죠. 47년이에요. 이 시간동안 루나리안이 어떤 삶을 알았는지 아세요? 우리가 외계인이에요?”
리히터는 눈을 피했다.
“이젠 루나시티에도 사람들이 많이 살아요. 루나시티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많아요. 그 아이들이 차별없이 살 수 있게 해야죠. 같은 인간으로서요.”
“압니다. 저도 한때 루나시티에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요.”
하연은 리히터가 우주에 세 달도 지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굳이 꺼내지 않았다. 루나시티에 남으려고 했었던 마음을 말하려는 것일 테니까.
“차관님이 말씀하신 요구 사항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건지 스스로도 아시죠? 꼬인 관계를 풀려고 협상 테이블을 폈잖아요. 일곱 번이나요. 지금 요구는 달과 지구의 꼬인 관계를 묶은 채로 뚝, 잘라버리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예요.”
“싸울 생각이었으면 루나시티까지 오지도 않아요.”
“진심이라고 받아들일게요.”
하연은 박수를 쳤다.
“그럼 우리, 앞선 이야기들은 전부 없는 걸로 해요.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 봐요.”
리히터는 메마른 입술을 위아랫니로 꼭 깨물고는 콧바람을 푹 내쉬었다.
“알겠어요. 서기관님.”
“저희 좋았잖아요. 다른 요구사항이라면 심사숙고 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지구연합의 요구는 한 가집니다. ‘전염병의 책임이 루나시티에 있다.’”
“차관님!”
제8차 지구-달 관계 협의의 재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렸다.
<계속>